Ready-Made와 영상이미지

Ready-Made와 영상이미지

조광석 (미술평론가, 경기대 교수)

20세기 미술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이슈는 Ready-made의 출현과 영상이미지의 사용이라 볼 수 있다. 이 두 요소는 미술, 특히 회화적 표현의 한계에 대한 발상을 바꾸어놓은 계기가 되었으며 작품제작 방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의 기반은 사회적인 요인과 미술 내적인 원인이 함께 한다.
사회적 요인으로서는 산업혁명이후 변화된 경제구조와 그에 따른 시민들의 예술수용의 변화를 이루게된 것이다. 한편 이미 깊게 뿌리를 내린 회화의 문제점을 재확인하게 하고 미술 작품의 소비방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20세기동안 미술경향의 중요한 전환동기는 사회변화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확산은 이제까지 소외되어왔던 소시민들에게도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점차 그들의 취향을 예술에 반영하게된 것이다. 그리고 풍요를 기약하는 대량생산된 상품과 그것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상술의 발전은 생활환경을 변화시키게 된다.

작품내용에 있어서 변화의 근거는 재료와 그것을 다루는 기술의 변화에 관련이 있으며, 그러한 미술 작품에 대한 평가도 서서히 진화를 하고 있음을 말한다. 흔히 새로운 technology를 사용하는 미술 작품의 성향은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들은 미술 작품을 이제까지와 다른 시각효과를 통하여 우리시대의 욕구를 단순한 삶의 반영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라 평가된다. 여기에서 정보제공을 위한 기능적인 목적으로 개발된 매스미디어는 예술에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사회에서 매스미디어는 점차 그 자체가 소비의 주체로서 확산 되어가게 되어 작가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매스미디어의 출현은 정보를 유포하며 수용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였으나 점차 수용자의 모든 관심을 독점하는 현상을 보게된다. 메시지가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되고 매스미디어를 통한 메시지의 유통과정이 상호 교환적이며 오히려 소비자의 취향을 조종하는 역행되는 현상이다.

근래에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메시지를 생산자가 상업적 목적으로 일방적으로 대량 유포시키게되며 메시지의 수용자 쪽에서는 자기 방어적 선택을 위해, 정보의 수용 욕구를 함께 반영하는 상호보완적 상황에 이르게된다. 이와 같은 상황을 비판적으로 대응하는 작가의 출현을 보게된 것이다. 소위 비디오 아티스트라 불리우는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업은 ‘비디오 아트’라고 일컬어지는 영상예술의 등장을 보게 했다. 비디오-아트에서는 텔레비전 모니터가 작품으로 사용되고 모니터 안의 영상 이미지와 함께, 모니터는 그 자체가 일상적인 사물(objet)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 새로운 오브제로서 모니터는 영상이미지와 함께 시각적인 상황을 공유하게 되어 더욱 더 상상적 세계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초기 비디오-아트의 경우 영상이 방영되는 환경을 작품으로 포함시키지 않고 그 영상 이미지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영화처럼 내용의 흐름에 집착하게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비디오-아트는 최소한 비디오가 방영되는 장소나 모니터를 작품 안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일상적인 영화에서 나타나는 이야기 중심의 영상 이미지와 비디오-아트 이미지의 애매함을 벗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영상 이미지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은 동영상의 흐름으로 인한 이미지의 변화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동시에 녹화되고 재현되는 비디오의 발전으로 영상 이미지에서는 실제 삶을 그대로 촬영하여 재현된 허구로서 받아들이기보다는 실제와 동일하게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재현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회화와는 다르게 현실 자체에 대한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라, 이미지의 사실성을 고착화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일반적인 사건을 기록하는 스냅 사진의 사회적 기능에서 파생되고 있다. 우리는 기록 사진의 이미지를 통해 마치 현장을 포착하듯이 실제의 증거물로 확실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영상예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공중파 방송으로서 TV의 출현이다. 일반 가정에 보편적으로 TV가 보급되면서 영상문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고 미술에서도 극단적인 변화를 이루게된다. 이미 새로운 시각예술로서 자리를 잡은 영화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있던 TV는 녹화방식의 개발과 근래에 도입되기 시작한 디지털화의 작업으로 이제까지 영상에 대한 이해와 전혀 다른 시뮬레이션으로 정착되고있다.

미술내적 변화로서 회화의 한계는 19세기까지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왔던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쇠퇴, 신흥 지식인들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있다. 전통적 회화는 기본적으로 일회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있다. 작품은 작가의 손에 의해 직접 제작 된 기능적 손의 역할에 의해 결정되어지었다. 작품의 제작은 작가의 천재적 재능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며 수공업적 생산 방식에 의해 일품회화라는 아우라를 만들고 있었다.
여기에서 작품의 소유와 감상은 철저히 개인적 능력에 의존하게된다. 그것은 어느 면에서는 지적 우월성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게된다. 결국 귀족이나 부르주아처럼 사회특권층에 대한 우월성을 옹호의 자세라 볼 수 있다. 이는 19세기까지 사회의 모든 변화를 주도하고있던 지식 상류층의 문화로 형성된다.

이러한 문화적 성향은 20세기 동안 모더니즘으로 일컬어지면서 지적 이데올로기를 확산하지만, 그 한계는 추상미술과 같은 장르에서 확실하게 나타난다.
추상미술은 미술계에 주도적인 경향으로 자리를 잡게되지만 실제 감상자에게는 수용하기 어려운 추상미술의 확산은 주로 20세기 중반에 중요한 지위를 형성하지만 그 발단은 이미 19세기 인상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이는 모더니스트들에게는 모더니즘의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는 기반이 되지만, 다른 면에서는 추상미술이 19세기의 잔재로 평가하게된다. 따라서 20세기말까지 그 위력을 발휘하고있으며 현재의 다양한 미술형식에 영향력을 보여주는 추상미술은 19세기 패러다임에 넣어야할 것이다.

반면 Ready-Made는 대량생산이라는 생산 방식으로 작가의 일품제작을 무시한다. 이는 산업사회의 의식구조의 반영이면서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게 하고 있다. 이는 작품의 대량 복제와도 관련이 되지만 이미 작가의 제작 기술에 대한 무시에서 출발하게 된다. 여기에는 작가의 수공적 손재주가 없이도 작품제작은 하나의 질서로 나타나게된다.
물론 초기 전위작가들이 단순히 제시하였던 ‘선택된 오브제(Object Trouv )’는 작가의 기존의 예술과 사회에 형성된 질서에 대한 반발적의도가 강하였지만 전후(戰後) 새로운 세대들은 오히려 능동적 자세로 수용하게된다. 20세기 초반에 출현한 Ready-Made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알레고리를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다. 그것의 수용 방식에서 다른 가치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즉 고도로 발전된 산업사회에서 일반적 소비와 예술소비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20세기동안 이룬 문화 예술의 변화는 소수의 수용자에 의존하는 주관주의 예술에서 수용자의 확대를 추구하여 경제적 수익을 우선적인 가치로 두는 경향이 나타나게된다. 따라서 새로운 예술은 다수의 참여가 가능한 예술의 형식을 요구하게되고 그것은 경제적 가치와 일치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Ready-Made와 영상이미지는 ‘세기말’과 ‘밀레니엄’의 정서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측면을 벗어나 문화의 수용자에게 희망적 사건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은 서구 물질문명에 대한 절망감을 안고있으며 자연과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라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예술 형식으로 진행하게 하고 있다. 이 Ready-Made와 영상이미지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이분법을 벗어나고 있다. 작가는 작가중심에서 수용자중심으로 전환하게 되고 저급문화의 활성화, 수용자중심의 기회주의, 파괴적 문화의 불가피한 수용, 창작적 문화의 소멸, 인종차별적 경향, 사회 결합의 약화, 하위 개념의 확산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 박승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6-26 00:33)

사이보그적 예술, 사이보그적 생태: 전자매체시대의 몸의 새로운 숙명

사이보그적 예술, 사이보그적 생태: 전자매체시대의 몸의 새로운 숙명

김원방(미술평론, 미학)

우리는 끊임없이 살아있는 형태 속에서 그 가변성의 극단적 한계를 추구한다. – H. G. Wells

유인원, 사이보그, 여성, 이들은 모두 서구의 진화론적, 기술적, 생물학적 서사에 있어 동요하는 위상 속에 있었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괴물’이다. 이제 괴물들은 ‘의미’한다. 우리는 예감에 차있고 소박하지만은 않은 이 괴물들이(에 관해) 만드는 지식들에 대한 생물정치학적, 생물테크놀로지적, 페미니즘적 이야기들을 다변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힘에 있어 차별화되고 고도로 배척되는 괴물들의 존재방식은 가능한 다른 세계들의 징표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분명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세계의 기호들이다. – D. Haraway

권력에의 의지란 차이를 수용하는 힘이다. – F. Nie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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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국내의 테크놀로지 관련 논의, 특히 미학적 논의의 장에 있어, ‘사이보그’란 개념은 좀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바는, ‘사이보그’라는 것을 미래 기술의 어떤 특수한 변종적 현상으로 다루거나, ‘Science Fiction’ 계통의 대중문화적 취향을 옹호 또는 비판하거나, 혹은 ‘테크놀로지’가 주도권을 잡고있는 현 예술과 문화의 흐름 속에서 ‘사이보그 예술’이라는 새로운 쟝르의 도래를 알리려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테크놀로지-인간-예술’의 세가지 개념의 연쇄를 ‘사이보그적 생태성’이란 용어로 재정의하고, 그 세목을 살피고,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기술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새로운 진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사이보그 개념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미학과 세계관으로 회귀함으로써, 하이테크놀로지의 온갖 재현물들로 구성된 기이한 미래와 이제는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과거를 이어주는 통로를 마련하는데 있다. 즉 우리는 사이보그란 것을 단지 공상과학이나 만화가 만들어낸 괴이한 구경꺼리가 아니라, ‘삶과 예술이 가능해지는 조건’이라고 하는 확장된 은유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사이보그(cyborg)’의 어원은 잘 알려져 있듯이 ‘cybernetic organism’으로부터 온 신조어이며, 인간의 지능에 의해 촉발된 인공적이고 확장된 육체에 적용되어 말하여 진다[1]. 즉 그것은 인간(유기체)과 기계가 결합되어 같이 작동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계-인간’의 결합적 상태에서 양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은 많은 과학자들과 문학가들에 의해 일찌기 이야기되어 왔으며 맥루한(Macluhan)은 미래의 매체문화 속에서의 사이보그적 생태를 예견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전자매체들의 일반화를 통해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적 생태계’의 깊은 곳에서 살고 있다. 습관적으로 우리가 지니고 다니는 물건들과 의복들, 그리고 헤드폰, 오디오, 휴대폰, 호출기, 캠코더, PDA, 모뎀, 계산기, 심지어 ‘Data glove’에 이르기까지, 이것들은 몸과의 통합체계 속에서 기능하며, 우리는 기계와 상호호환되고, ‘단백질’과 ‘실리콘’이라는 두개의 범주는 통합되어 버린다. 나의 신경계는 지속적으로 디지털망에 접속되고, 변형과 확장이 가능한 사이보그가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더욱 더 의류와 비슷하게 된다. 전자매체적 환경 속에 동화된 이러한 존재를 인간인가 기계인가를 구별하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보그적 존재는 “단순한 조합(일반적 도구의 경우에서와 같은) 이상의 상태이다. 사이보그는 기계란 것이 의식의 도움을 받지않고, 신체의 동질적 통제(homeostatic control)의 상태 속에서 작동하는 그러한 특이한 관계를 수반한다.”[2]소위 신체의 ‘morphing(변형)’, ‘borging(사이보그화)’ 등의 표현은 그러한 상호접합과 변형의 상태를 의미하기 위해 생겨난 신조어들이다. 사이버 문화에 있어 신체란 것은 외부성에 의해 침투가능하며, ‘근대적 신체’, 혹은 ‘비트루비우스적(Vitruvian) 신체'[3]의 통합성과 신성함은 티타늄 합금으로 된 무릅관절이나 ‘전자 팔’, 합성혈관 등의 보철(prosthesis)에 의해 침해당한다. 이러한 보철적 생태성은 의학적 대체물뿐만 아니라 건축적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 나가며, 디지털 시대의 건축가와 도시설계가들은 주변의 공간이 바로 전자정보로 가득찬 보철행위의 영역, 즉 ‘사이보그적 공간’이란 관점에서 환경과 육체의 관계를 재지형화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맡게 되었다.[4]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특히 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SF영화들, 그 예로 영화 < 로보캅>, <론머맨>, <터미네이터>, <기억상실증에 걸린 죠니/Johnny Mnemoniac> 등을 통해 폭발적인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단지 음울한 사이버 펑크적 ‘테크노-디스토피아’를 ‘볼꺼리’화한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속에서의 ‘후기인간(post-human)’의 출현에 대한 예감과, ‘변질된 인간’이 내포하는 상실의 멜랑콜리를 드러내주고 있다. 고전적인 SF문학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사이버펑크 문학’ 속에서 사이보그적 존재들은 비록 오래된 패러다임으로부터는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폭력적이고 남성중심주의적인 미래를 상정하며, 그러한 사이보그의 감정과 느낌은 ‘인간주의적’ 차원 속에서 함몰되어 버린다.

우리가 사이보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로 삼고 집중적으로 참고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다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에 의해 정의된 사이보그인데, 그 이유는 비록 그것이 후기자본주의의 가장 암울한 기호전쟁 속에서 사이보그를 찾아내고 있긴 하지만, 이로부터 인간과 기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가장 급진적인 대화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고갈될 수 없는 정치적 행동의 가능성을 갱신해내기 때문이다.

[담론적 몸으로부터 사이보그적 몸으로: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우리가 몸이란 것이 삽입되고, 칠해지고, 쓰여진다 라고 말할 때, 그것은 몸에 대한 담론 – 즉 몸이 문화적 결정론의 맥락 속에서 재현되고, 몸이 문화적 기호의 매개체가 되는 과정에 대한 – 을 행함을 의미한다[5] . 서구문명을 통해서 여성은 너무나 오랜 동안 ‘객체화된 살’로 환원되어 왔으나, 후기구조주의와 페미니스트들의 몸 정치학에 대한 관심은 전통적 몸 개념을 ‘재현의 전투장소’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특히 80년대 초 이후로, 우리의 신체에 대한 지식이란 것은 몸이 자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라는 관점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성차화(gendered)된 몸의 문화적 구축’과 투쟁하려 한 페미니스트들의 시도는 다시 한번 과학과 기술에 의해 급격한 전환을 맞게 된다. 기술과 과학이란 것을 합리성의 남성적 숭배라고 비난하던 초기 페미니즘 비평들은 이제 “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전개(유전공학 같은)와 그리고 지식과 진리의 사회적 구조화라는 철학적 프레임워크들이 얽혀 만드는 질문의 다발에 자리를 내주었다.” [6] 정보화시대의 여성적 신체와 기술의 접합을 응시하면서, 해러웨이나 나오미 울프(Naomi Wolf) 등의 페미니스트들은 몸 전반, 특히 ‘여성적 몸’에 대한 깊은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몸(특히 여성의 몸)이란 것은 한때, 특히 80년대의 일종의 ‘광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는, 담론의 재현적 효과로만 간주되고 종국에는 사라지는 단계에까지 이른 적이 있기도 했다. 이러한 ‘몸의 포스트모던적 사라짐’은 기술과 매체의 폭발 속에서 몸이 증발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서 크로커(Arthur Kroker)의 맥루한적 설명을 따르면, 오늘날 ‘자연적 몸(natural body)’은 사라지고, 기술적으로 생산된 ‘모조물적 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현재의 문화를 지배하는 바, 몸에 대한 광적인 문제의식 – Aids, 약물중독 등 – 은 통제와 안전에 대한 사회적 불안의 기호들로 나타난다. 그러한 ‘광적인 몸’은 “몸이란 것이 극단적으로 다시 부활되고, 가공적 주체성의 마지막 폭발처럼 나타나는 그러한 문화의 쇠락을 가르키는 징표이다” [7] . 그리하여 몸은 단지 ‘시대에 뒤떨어진(obsolete)’ 것이 되었고, 수많은 기술적 확장들에 의해 대치된다는 것이다. ‘광적인 몸’의 수사학적 범람은 기술적 장치에 의한 대체를 통해 자연적 몸의 사라짐으로 이어지고, 다시 그것은 ‘사회성(the social)’의 사라짐 – 즉 종말론 속에서 함께 일상을 살아나가는 데에서 생기는 사회적 유대성 – 의 최종적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A manifesto for Cyborgs, 1985)’은 우리 생활에서 이미 지배적인 신기술의 편재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나아가 기술을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위해 차용하고 합병하라는 제안이다. 몇몇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테크놀로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울한 숙명론적 입장들과는 반대로, 더욱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의제(agenda)로 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독해는 기본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것이 ‘후기자본주의논리의 문화적 지배인자’로 규정한 프레데릭 제임슨의 생각을 기본적으로 따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전반기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은 공장, 파워 플랜트 등 하이모더니즘의 기념비들을 통해 시각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기술이란 것은 더이상 동일한 재현의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8] 전화, 라디오, 텔레비젼, 컴퓨터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퍼져있는 우리의 소통망을 ‘재현할 수 없음’, 이것은 곧 오늘의 다국적 자본주의의 전체적 세계시스템을 재현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전체적 인식의 지도(cognitive mapping)를 발명하고 투사해야 한다는 과제가 새로이 주어진다”[9] .

해러웨이는 전통적으로 남성적(macho)이고, 군사산업적이던 사이보그에 대해 페미니즘 내부의 입장에서 보아도 매우 도전적이고 일탈된 읽기를 시도한다. 많은 기존의 페미니스트들, 예를 들어 클라우디아 스프링거(Claudia Springer) 같은 경우, 터미네이터나 로보캅 같은 존재는 단지 어떤 향수, 즉 남성적 우월성이 당연히 인정되던 시대, 기술이란 것을 단지 남근적 힘을 되찾기 위한 은유로서 필요했던 시대의 노스탈지어를 표현한다고 보았다[10] . 또한 문화이론가 스콧 버캣맨(Scott Bukatman)은, “로보캅이나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들이 ‘인간의 쇠퇴’라는 불안의 지속을 내포하고 있고, 따라서 그 목적은 원래의 인간성을 재정의하려는 것이다. (…) 우리의 존재론은 표류한다”라고 말하면서 사이보그적 이미지의 역기능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11]

사이보그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관점들에 대해 해러웨이는 선언한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며, 정치학이다.”[12] 로보캅이나 기타 무장한 사이보그들처럼 결국은 인문주의적 목적을 지향하는 군사산업적 목적의 사이보그와는 달리,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는 모호한 혼성적 융합과 차이의 지속에 의해 동요하는 ‘미래의 인격화(personification)’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기계와 유기체, 문화와 자연, 모조물과 원본, 공상과학과 사회적 현실을 한개의 몸 속에 화해시킨다. 잠재적이고 금기된 융합의 쾌락 속에서 태어나며, 부분성, 내밀함, 변태성을 단호히 수용하는 하나의 ‘유토피아적 괴물’로서의 해러웨이적 사이보그는 해결되거나 억압되기를 거부하는 차이(성, 인종을 포함한 모든 것의)의 살아있는 심볼이다[13] . 해러웨이가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이다”라고 선언할 때, 그녀는 이 말을 유기체와 기계 사이에 조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학적 의미로,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는 이제 통합된 산업적 사회가 아니라 다형태적(polymorphous) 정보시스템이 관통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라고 하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기술이란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대립적 양극성을 전치시키고 있다는 의미이다.

“20세기 후반의 기계들은 자연과 인공, 마음과 몸, 자기발전과 외적 디자인, 그리고 유기체와 기계들에 적용되던 많은 구별들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기계들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고,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정체해 있다. 우리의 과제는, 서구적 자아를 구조화하는 위계적 이원론의 대립, 그 안에서 가능했던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의 명료한 구분을 붕괴시킴으로써 잠재된 가능성들을 새로이 감싸는 작업이다.”[14]

이러한 기조 속에서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은 기술과 과학을 적대시하는 기존의 페미니즘들을 비판한다. 기존의 페미니즘들은 앞서 말한 이항대립의 억압적 구조를 전복하려 하였으되, 이것은 단지 각각의 대립에 있어 열등한 것을 복권시키려는 시도에 머물렀다. 소위 ‘Ecotopian 페미니즘’, ‘New Age goddess 페미니즘’, 그리고 카사 폴리트(Katha Pollitt)가 ‘차이의 페미니즘(difference feminism)’이라고 부르는 것 등, 여성의 ‘내재적’ 감성이나 특성들을 주장하는 페미니즘말이다. 여성이란 여기서 ‘어머니 대지(mother earth)’로서 상징화되고, 문화나 정신보다는 자연(몸)에, 합리성보다는 직관에 조율되어진다. 그러나 해러웨이에 의하면, 계몽주의적 의미의 자연이나 몸, 그 어느 것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 모두, 인공심장과 유전학적으로 개량된 옥수수의 시대에는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다. 자연과 몸, 그리고 주어진 것들 모두를 문화적 구축물로 보는 20세기 후반의 기술논리(techno-logic)는 이제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모든 기존의 유기체적, 자연적 입장들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신 뿐만 아니라, 여신도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학과 기술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내밀하게 재구조화되는 세계에서의 여성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기존의 페미니즘은 ‘反-과학형이상학’이나 ‘테크놀로지 악마이론’같은 것을 무력화시킬 수단을 제공할 수 없다.”[15]

“‘페미니즘적 체현(embodiement)’이란 것은 , 여성적인 몸이건 다른 것이건, 육화된 몸의 고착된 위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장(field)들의 매듭들, 운동의 내적 굴절, 물질기호학적 장에서의 의미의 차이들에 대한 책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체현이란 것은 그어떤 의미있는 보철인 것이다. (…) 페미니즘은 다른 과학들과 테크놀로지를 사랑한다. 즉 해석, 번역 그리고 부분적 이해의 과학이나 정치 같은 것 말이다. 번역이란 것은 항상 해석적, 비판적, 부분적이다. 바로 여기에 대화와, 합리성과, 객관성의 바탕이 있게 된다. 그것은 권력에 예민한(다원주의적이 아닌) 대화이다. (…) 과학과 테크놀로지 역시, 폐쇄된 모델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박되고 반박할 수 있는 것을 그 규준적 모델로 하여 만들어져야 한다.”[16]

발라드(Ballard)는 이 말들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간략히 요약한다: “과학과 기술이란 것은 이제 우리들 주변의 모든 것을 다중화한다. 즉 우리가 말하고 사유하는 언어를 지배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그러한 언어를 사용하든지, 아니면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17] 해러웨이가 강조하는 바, 테크놀로지와 과학의 사회적 관계들을 책임진다는 것은, “反-과학의 형이상학과 테크놀로지의 악마론을 거부함으로써, 일상의 경계들을 재구축하는 능숙한 과제를 떠맏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타자와의 부분적 접합(connection)과 우리의 부분들과의 소통을 통해서이다. 이 말은 과학과 테크놀로지만이 인간적 행복의 가능한 수단이거나, 지배의 모태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이보그적 이미지들이야말로 우리가 여태까지 자신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 온 이원론의 미궁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18]
사이보그는 허구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실제적 경험의 문제이다. 사이보그는 문화적 독해의 바탕을 이루는 지배의 관계들을 드러냄으로써, 그 어떤 텍스트화의 확실성도 전복한다. 그럼으로써 사이보그는 ‘물질적 몸’을 다시 긍정하고, 포스트모더니즘 내에서의 ‘몸의 사라짐’을 비판한다. 사이보그는 ‘담론적 몸(discursive body)’을 물질적인 몸과 ‘접속’시킨다. 결국 사이보그는 몸이란 것을 문화적 구축과 물질적 실제라는 두가지 지점으로부터 동시에 접근함으로써 기존의 페미니즘에 도전한다. 몸이 자연적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구축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몸이 단지 물질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면서도, 또한 역으로 몸이란 것이 단지 담론적으로 구축된 것 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19].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자연 대 문화’라는 대립의 붕괴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몸 테크놀로지 시대에 있어 여성에게 ‘부과된 몸’이란 것은 단지 다양한 의미의 체계로 이루어진 인공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이버-사이보그적 생태성]

전자매체문화는 사이보그를 비롯하여 새로운 생태적 장의 열림을 수반한다. 사이보그란 인간과 그 자연적 환경 사이에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가 개입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생태 속에서 유기성과 비유기성, 물질성과 비물질성, 인간의 지능과 인공적 지능들은 서로 합류하고 조합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가변적인 몸의 시대를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생태학을 우리는 총칭하여 ‘사이버 생태학(cyber-ecology)’ 혹은 ‘사이보그적 생태학(cyborgian ecology)’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적 유기체와 인공적 유기체 사이에 일어나는 가변적 상호작용의 과학을 말한다. 캐서린 헤일즈(Katherine H. Hayles)에 따르면, “인간경험의 기본요소들이 변질되면서 그 경험들은 단지 구축된 것으로서 드러나기를 그친다. 경험의 가장 근원을 형성하고 있다고 믿겨져 왔던 인간의 주체란 것은, 그 역시 해체, 재구축되며, 이로써 자신의 본질을 변질시킨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미 이러한 ‘후기인간(post-human)’의 존재를 예고하고 밑그림을 그려왔다.” [20]우리는 바로 그러한 사이버-사이보그적 생태 속에서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가변성이란, 사이보그의 은유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인식과 지각 자체가 ‘cyborganic’해지는 유동적 생태모델을 말한다. 그것은 감각이 경계없이 퍼져나가고 접속되는 변형, 혹은 돌연변이(mutation)의 문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감각의 새로운 지평이며 ‘초-기관적(meta-organique)’인 상태이다. [21]세계에 대한 ‘cyborganique한 지각’이란 바로 그것이다. 여태까지의 몸은 일종의 고립된 ‘섬-몸(island-body)이었다면, 이제는 ‘몸-바다(body-ocean)’ – 동시에 유기적, 전자적, 정보적인 – 와 같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22]

이러한 사이버공간의 생태 속에서는 몸의 유기적, 기계적, 정보적 물질성이 우리의 지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몸의 ‘지속적 미끄러짐’이 우리 지각을 지배한다. 단지 정보의 흐름과 재조합으로만 간주되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모델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본질도 없다. 살아있는 존재야 말로 실은 사이버스페이스의 ‘성스러운 원전’인 것이다. 사실 우리의 몸은, 기계가 현실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화면 또는 거울이 된다. 우리의 몸은 물리적 우주가 기계를 위한 의미와 현실을 지니게 되는 그런 기호의 연쇄물이다. 즉 우리 자신에 의해서, 매체적 공간은 비로소 잠에서 깨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해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 몸의 현존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적이고 현상학적인 생태구조를 올리비에 디엔스(Olivier Dyens)는 ‘인식적 사이보그(cognitive cyborg)’라고 부르면서, ‘사이버스페이스’와 ‘사이보그’의 두가지 유사개념을 완전히 합류시킨다. 왜냐하면 그러한 몸과 사이버스페이스의 만남은 단순히 물리적 몸이나 물질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반(半)인간적, 반(半)기계적인 인식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알뤼께르 로잔 스톤(Alluquere Rosanne Stone)이 이미 말했듯이, 유기체와 기계 사이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성적이고 인식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몸은 사이버스페이스의 모태(matrix)가 된다는 것이다. 로잔 스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디지털적으로) ‘다시 계산된’ 육화, 그 밀도있는 욕망의 공간… 즉 사이버스페이스에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그 공간을 ‘신체적으로(physically)’ 짊어진다는 의미이다.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 혹은 이 사이버네틱한 위험하고도 유혹적인 공간을 꿰메어 나가는 과정은, 바로 ‘여성성’을 꿰메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사이버스페이스는, 솝책(Vivian Sobchak)의 말대로, 몸의 영혼을 벗겨내고, 동시에 그 영혼을 번쩍이는 표면과 현란한 색을 지닌 사이보그로 다시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사이버네틱한 행위(cybernetic act)’이다.”[23]

그리하여 사이버스페이스는 ‘정신의 풍경(mindscape)’이상의 것이 된다. 그것은 디엔스(Dyens)의 표현을 빌면, 일종의 ‘memescape’이라고 할 수 있다.[24] ‘memescape’는 ‘memes’ 지리학과 같은 것이다. 즉 인식(cognition)의 가소성(plasticity)이루어내는 풍경인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그러한 방식으로 생태적 풍경으로서의 memescape를 우리의 몸에 삽입하고 산종한다. 그리하여 “참여자는 사이버네틱한 로봇이 제기하는 지각들의 ‘수용자-수용체(receiver-receptacle)’가 된다. (…) 주체는 존재하기를 멈추고, 폴 비릴리오(Paul Virilio)가 말하듯이 하나의 ‘운동’이 된다. 몸은 ‘자기’라고 하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환경’이란 개념 역시 재정의 된다. 몸은 충만함과 고독함 사이에서 모호하게 된다. 운동의 ‘수용자’로서의 몸은 자신이 바로 그 매체(medium)가 된다. [25]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 즉 ‘기계우주(machine-universe)’와 ‘생물학적 장치(bioapparatus)’의 시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이보그적 예술]

사실 ‘사이보그 예술’이란 쟝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은 그 자체가 이미 항상 사이보그적이기 때문이다. 사이보그 생태성과 관련하여 이제 우리가 예로 삼고자 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작가 스텔라크(Stelarc)는 사이보그적 기술을 소재로 하여 사이보그적 체험과 생태를 더욱 밀접히 가시화한 경우로서 참조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이보그 예술’이란 쟝르의 창조를 알리는 전형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마치 ‘퍼포먼스 예술’이 미술사 속에 자리잡기 전에도 몸은 이미 항상 확장된 현상학적 조건 속에서 작동하여 왔다는 평범한 논리에 따르는 것이다.

68년부터 70년대에 이르는 동안 스텔라크는 소위 ‘감각의 방(Sensory Compartment)’이라고 하는 밀폐된 설치물을 제작하였다. 이 설치물 안에서 참여자(혹은 사용자)는 빛, 운동, 소리 등에 의해 심하게 간섭 받는다. 그가 만든 고글이 달린 헬멧은 착용자의 입체적 시각(두개의 눈에 의해 가능한)을 혼란시키고, 이미지들이 중첩된 거울의 집 같은 세계로 몰입시킨다. 이러한 초기 작업의 동기는 매우 맥루한 적인 전제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몸이란 것은 일종의 생리학적 하드웨어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생리학적 하드웨어가 바로 그 지적인 의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따라서 당신이 이 하드웨어를 변경한다면 역시 변질된 지각에 이르게된다는 각성을 주는 것”이 작업의 주 목표였다. [26]스텔라크는 이러한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보철(prosthesis)의 미학을 발전시킨다.이후 그의 행위들은 전선과 센서 등 매우 복잡한 첨단 하드웨어들로 가득차게 된다. 몸을 증폭시키고, ‘레이저 눈’과 ‘제3의 팔’, ‘자동 팔’을 만드는 등, 그의 몸은 인간-기계의 혼성적 존재로 갱신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의 단말기적 존재가 되어나가고 있다고 하는 은유를 시각화한다. 존 셜리(John Shirley)는 해러웨이적 어조로 스텔라크에 대해, 그의 작업이 사이버펑크적인 후기인간에 대한 갈망의 체현이며, 공포와 영광으로 결합된 키메라이며, ‘전(前)인간성’과 이제 태어나려 투쟁하는 내일의 인간성의 종합이다”라고 규정한다.[27]

스텔라크의 사이보그적 퍼포먼스 중에는 플라스마가 들어있는 유리관으로 가득찬 설치물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 이 플라스마는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생체신호들에 응답하여 방전되고 명멸한다. 일종의 새장과 같은 구조물이 그의 어깨에 고정되며, 이것이 아르곤 레이저 파동을 발산하는데, 그것은 스텔라크의 몸에 붙은 심장박동기(electrocardiograph)의 신호, 눈의 깜빡임, 얼굴근육의 변형, 머리의 운동 등의 신호에 일치하는 것이다. 작품 에서는 자신의 주변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들이 행위를 촬영하고, 그 이미지들이 여러 개로 분리된 큰 스크린에 투사된다. 그 이미지들은 중첩되고, 얼어붙고, 병치된다. <제 3의 팔(the 3rd hand) >에서는 작가의 오른팔에 플라스틱 인조소매가 부착되어 있고 이것이 제 3의 사이보그 팔로 연결된다. 그 ‘사이보그 팔’은 이상한 소리를 발산하며, 금속 손가락은 허공을 잡으려 애쓰기도 한다. 이것은 전체적으로는 스텔라크의 배근육과 다리 사이에서 오는 ‘근전도(electromyogram)’의 신호에 따라 작동하는 정교한 로보트이다. 그것은 290도의 방향으로 회전하고, 물건을 잡아 들어올리고, 약간의 기초적 촉각을 갖춘 피이드백 시스템이다.

맥루한에 의하면, 기술에 의한 ‘몸의 연장’ 혹은 ‘자기 절단(auto-amputative)’의 전략은, 극도로 자극을 받은 신경체계가 ‘기술의 속도와 부하의 빠른 증가’라는 문화적 촉매에 대해 행하는 반응이다. 스텔라크 역시, 정보시대의 과도한 속도는 이미 신경체계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맥루한의 관점을 따라간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두개의 눈과 1400cc의 뇌를 가지고 생멸의 원리에 지배받는 우리의 몸이 과연 생물학적으로 적합한 몸인가를 의문시해야할 때이다. 그것은 이제 정보의 양, 복잡성, 질에 전혀 적응할 수 없다. 지구라는 행성의 가장 중요한 압력은 중력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이 되었다. 이제 정보는 ‘후기진화적 몸(post-evolutionary body)’의 형태와 기능을 조형해 나간다.”[28]

그리하여 극소화하고 신체적으로 호환가능한 기술의 발전에 의해, 언젠가는 각각의 개인이 스스로 하나의 ‘종(species)’이 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이다: “기술이 몸을 침범할 때 진화는 끝난다. 일단 기술이 각각의 개인에게 자신의 독자적 발전과 진화의 가능성을 제공하기 시작할 때, 종의 일관성은 더이상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29]” 이러한 인간-기계의 공생은 단순히 SF적 상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문화적 제의(cultural rituals)’, 예를 들어 소위 ‘현대적 원시인들(modern primitives)’ 들이 행하는 ‘몸 장난’, 즉 몸의 일부를 변형시키는 행위들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며, 나아가 중세 유럽에서의 과학과 마술의 연금술적 결합같은 것을 보여준다.무사파르(Musafar)는 “우리는 현재 마술과 테크놀로지와 과학을 결합하는 지점에 있으며, 물리학자의 이론을 들으며 연금술을 상상해낸다”고 말한다. [30]이 말은 “리얼리티에 대한 몸의 주관적 총체성을 파편화한 기술은, 이제 그 파편화된 체험들을 재결합하려 하고 있다”라는 스텔라크의 말과 직결되며, 그것은 자아와 타자, 문화와 자연간의 단절이 있기 전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사이보그적 생태성은 사이보그적 로보트를 도구로 한 예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이버 공간과 접속되고 몸과 시선의 변형을 수반하는 작업들은 모두 다 기본적으로 사이보그 적이다. 여기서 예로 들고자 하는 또하나의 작품은 카트린 이캄(Catherine Ikam)과 루이 플레리(Louis Fleri)가 공동으로 제작한 상호작용적(interactive) 설치작품이다.

<타자/Autre>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1992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미래의 이미지 전>에서 처음 보여진 작품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어두운 방에는 대형 비디오 스크린이 있으며, 이 스크린 위에는 하나의 ‘얼굴'(컴퓨터로 합성된)이 투사된다. 방의 가운데에는 줄끝에 달린 센서가 있고, 관객은 이 센서를 사용하여 이 ‘타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그 센서를 사용하기에 따라 얼굴은 커지거나 작아지며, 또는 돌리고, 숙이고, 변형되기도 한다. 즉 그것은 ‘살려고’ 시도한다. 이 설치의 특징은 바로 관객으로 하여금 그 얼굴을 직접적으로, 원하는대로 콘트롤하지 못하게 하는, 프로그래밍의 우발적 측면이다. 사실 관객은(혹은 대화자는) 종종 그러한 얼굴의 변화에 대답하려고 시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이러한 작품은 이미 본질적으로 사이보그적 생태에 잠겨진 세계이다. 왜냐하면 우발적으로 변화하는 디지탈 얼굴 위에는 어떤 공포가 나타나지만, 이 공포는 꼭 내것 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자신의 독립적 고뇌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 사이버스페이스의 ‘침묵’은 우리 자신에게도 투사된다. 그것은 하나의 인식적 공간(혹은 ‘memescape’), 무거운 감정으로 차 있는 공간인 것이다. 어떤 고독감과 절망감이 작품 속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 우울함은 우리에게는 한편 이질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기체-기계’라는 관계 속에 속하기 때문이다. 에드몽 쿠쇼(Edmont Couchot)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미지는 더이상 닫히고 침투할 수 없는 공간이 아니라, 열려진 세계이다. (…) 마치 그 이미지들은 자신이 이미지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 의미는 더이상 코드와 해독, 진술, 전파, 수용과 독해 속에서가 아니라, 이미지와 보는 자의 혼성 속에서 발생한다.[31]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감정은 상업화된 테크놀로지 산업들이 인식시키듯이 기쁨이나 공포인 것만은 아니며, ‘침묵과 절망의 가상성’에 더욱 밀접히 연관된다. 여기서 ‘가상성(virtuality)’이란 것이 단지 후기산업사회 테크놀로지의 산물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자. 가상성이란, 멜랑콜리 속에서 얽혀진 추억이며 기억이란 점에서, ‘예술의 기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상성이 바로 우리를 예술과 함께 그리고 예술 속에서 있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상적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은 결코 ‘비현실적(unreal)’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他-실제적(alter-real)’, ‘超-실제적( meta-reel)’인 것이다.

“실재(reality)란 것은, 우리 삶의 의미가 발견될 수 없고, 보거나 만질 수 없는 그런 공간이나 장소에서 나타날 때 가상적이 된다.” [32]

가상성이란 것은 우리의 보호막이며, 우리의 숙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후의 혹은 이전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빠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사회와 예술과 역사를 구축하게 하며, 우리의 한정됨에 대한 아픔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상성에 의해 우리는 엔트로피적 세계에 대해 감정적, 인식적 질서를 준다. 우리가 가상성 속에 빠져들 때,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다시 만들려 하고, 우리의 채워질 수 없는 욕망으로부터 우울함을 만들어 낸다. 가상성이란 것은 그 자체가 다른 시간에 젖어있는 신화이며, 멜랑콜릭한 시간이다. 불행히도, 많은 테크놀로지 예술과 문화들의 경우 단지 정보자체에만 집중하며 이러한 멜랑콜리에는 무심한 경우가 많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그것이 만일 침묵의 자리(분노의 침묵, 절망이나 기쁨의 침묵)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떤 초월도 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특징과 성격은 테크놀로지 예술에서 종종 부재하고 있고, 너무 시끄러운 것,즉 정보를 가상화시켜 전개시키는 데만 열중하고, 그것을 침묵시키는데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다. 작품 <타자>에서는 우발적이고 예측불능한 것이 현존한다. 바로 그러한 침묵 속에서 새로운 소통의 형태(상호대화적인)가 설립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식적 사이보그’의 생태성이다.

[변신과 사이보그]

이상 열거한 사이보그적-사이버스페이스적 생태성이란 기본적으로 ‘변신'(매우 ‘이질적 종합’으로서의
‘metamorphosis’)이며, 그 멜랑콜릭함이란 그러한 변신상태의 멜랑콜리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그러한 생태성을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도래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 몸에 충만한 잠재성과 현재성의 형태로 주어져 있는 조건을 살펴봄으로써 사이보그의 개념이 지니는 철학적 함의에 대해 약간은 가설적으로 정리하고 끝맺으려 한다. 그것은 바로 ‘변신’과 ‘타자의 긍정’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수반하는 특유의 긍정적 ‘힘’에 관한 것이다.

들뢰즈-가타리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분석을 통해 논한 ‘변신’의 개념은, ‘이질적 접합의 원칙’의 실제적 과정을, 실제적으로 ‘다른-것이-됨’의 과정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말벌은 난초의 재생산 장치의 부분이 되며 동시에 난초는 말벌을 위한 성적 기관이 된다. 각자가 되는 ‘그것’은 ‘그것’이 생성되는 만큼 변한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교차’이다.

“변신은 재현이나 모방이 결코 아니다. 변신은 포획이고, 소유이고 덤태기이다. (…) 중요한 것은 어떤 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기호체계의 한 조각을 포획하는 일이다.”[33]

이는 하나의 단일하고 동일한 생성, “서로 절대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두 존재들의 비평행적 진화”이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곤충으로 변하기보다는 ‘곤충이-되는-인간’으로 머무른다. 이러한 곤충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탈주선’을, 상황을 변화시키는 수단을 찾았음을 의미한다[34]. 카프카는 진술하는 주체(카프카 자신)와 진술의 주체(글 속의 ‘나’)로 스스로를 이중화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이중체를 내세워 사람들과의 직접적인(즉 ‘real’한) 만남을 피하며, ‘편지기계’가 계속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물들을 발명한다. 여기서 카프카의 ‘이중적으로 변신된 주체’는 기계와 가상공간과의 접합에 의해 혼성화되고 부유하는 사이버 주체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사이보그적 변신이 무생물이나 자연적인 것으로 이미 ‘재현’된 것들과 접합함으로써 그 이분법의 무한한 붕괴를 지향하듯이, 카프카적 변신은 현실이라고 하는 그 재현된 세계의 직접성을 피하고 대신 가상적 벌레와 접합함으로써, 그 ‘편지기계’는 가상/현실의 대립을 넘어 무한히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사이보그란 것이 “재현된 목적론이 없는 궁극적 존재상태”라는 해러웨이의 말은, ‘타자’와 ‘차이’가 우리에게 유발하는 ‘공포’를 끊임없이 수용하고 그 자체로서 긍정하는 힘의 지속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니이체의 ‘비극의 정신’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니이체는 ‘비극의 정신’을 궁극적인 긍정의 정신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연과 필연(을 모두 긍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성, 생성된 것, 존재 이 모두를 긍정하며, 복수성, 복수적인 것, 통일된 것 이 모두를 긍정하기 때문이다. 비극이란 ‘주사위 놀이’이다.”[35] ‘사이보그적 변신’이란 바로 그러한 니이체적 의미의 우연과 차이의 긍정을 바탕으로 한, 총체적 변형과 변신을 지향하는 것으로 확장해석될 수 있으며, 들뢰즈는 그러한 니이체적 변형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변형(transmutation, transevaluation)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1. ‘권력에의 의지’ 속에서 질의 변화: 가치란 것은 어떤 부정(negatif)적인 것(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긍정의 힘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유의 장소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차이에 의해 영구히 고립된) 다른 세계(autre monde)’라는 자리는 없다. 가치의 요소 자체가 그것의 위치와 본성을 바꾼다.

2. 권력에의 의지 속에서 각 요소들의 변환: 즉 부정성(negatif)은 긍정의 권력(puissance)으로 변화한다. 부정성은 긍정에 복종한다. 그것은 삶이 자기 안에서 반동적인 것을 보존하는 형태가 아니라, 이제 반대로 삶이 자신의 모든 반동적 형식들을 희생시키는 행위이다.

3. 권력에의 의지 속에서의 ‘긍정의 군림’: 오직 긍정 만이 독립적 힘으로서 지속한다.

4. 힘(forces)들의 관계의 전복: 긍정은 힘들의 우주적 생성처럼, 긍정적 생성을 형성한다. 반동적 힘들은 부인되고, 모든 힘들은 긍정적이 된다.(…)”[36]

‘사이보그-니이체’의 연결쌍은 니이체의 긍정과 비극정신이 그리이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왔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소급적 연쇄가 가능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비극의 사상가이다. 그는 삶이란 것을 근원적으로 천진난만하고 정당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실존이란 것을 유희의 본능을 통해 이해하였고, 실존을 종교적이거나 도덕론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미학적(esthetique)’인 현상으로 생각했다. (…) 그는 세계의 이원론을, 심지어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나아가 그는 생성을 긍정으로 간주했다[37]. 생성을 긍정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생성 밖에는 없다’라는 뜻이며, 다음으로 ‘생성을 긍정한다는 뜻’이며, 마지막으로 ‘생성의 존재(etre)’를 긍정하고, 생성이 존재를 긍정하고, 존재가 생성 속에서 긍정된다는 뜻”이다.”[38]

[결론]

사이보그적 예술과 생태에 대한 논의는 결코 사이보그를 비롯한 기이한 테크놀로지 예술을 부추기는 사고로 해석될 수도, 되어서도 안된다. 그것은 마치 “몸적으로 예술을 하자”, “몸을 권장하자”라는 모토처럼 모순되고 실행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몸이란 것은 예술의 소재처럼 생각될 수 있는 어떤 객체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와 사유의 조건이며 그 장(field)이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태까지 반복되어 이야기 된 대로, 테크놀로지란 것은 이제 우리의 존재와 행동과 사유의 조건이 된다. 이러한 뉴미디어의 도래 이전에도 이미 기술이란 것은 항상 그러한 조건으로서 작동해왔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도래함으로써 드디어 처음으로 주체/객체의 이분법이 무너진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생각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역사화’, ‘객체화’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

권력과 재현의 사유구조에 지배당하는 우리의 의식은, 최소한 의식 상으로는 기술에 대한 권력주의적 담론에 지배당하면서도 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러한 ‘조건으로서의, 신체의 일부로서의 기술’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존재하고 사유해 왔다. 내가 여기서 제안하는 것은 사이보그 로보트같은 것을 소도구로 사용하는 예술도, 예술 속의 사이보그도 , 테크놀로지를 쓰는 예술도, 예술 속의 테크놀로지도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의 모든 예술 속에 내재해 왔던 테크놀로지적 존재조건 혹은 사이보그적 존재조건을, 그리고 예술의 사이보그적 ‘역능성'(puissance)을 말하려는 것이다. ‘사이보그 예술’, ‘테크놀로지 예술’이란 새로운 쟝르는 없다. 예술 자신이 이미 그리고 항상 전적으로 사이보그이고 테크놀로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사이보그는, ‘예술의 근본적 힘을 재수행하는 힘’을, 그리고 그러한 ‘재정의를 위한 인류학적, 생태적, 정치적, 미학적 충동과 실현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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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보그’란 용어는 1960년 과학자 만프레드 클린(Manfred Clynes)이 만들어낸 것이다. 무릅관절처럼 대체가능한 인공적 신체기관에 관한 의학기술의 진보는, 유기체적 기관과 기계적 사물 간의 상호의존성을 증폭시킨다. 나아가 이러한 기계적 장치들이 인간의 기능적 신체의 일부로 화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이보그적 기계인간에 대한 상상은 이미 그 전부터 발견되며, 그 예로서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의 란 소설에서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정신을 기계에 이전시켜 스스로를 사이보그로 변환시킨다.

[2] David F. Chanell, The Vital Machine: A Study of Technology and Organic Life, New York, Oxford Press, 1955, p.129, (Mark Dery, Escape Velocity: Cyberculture at The End of The Century, New York, Grove Press, 1996,p.230에서 재인용)

[3] 다빈치의 잘 알려진 작품이 재현하는 이러한 신체는 바로 신체의 완벽한 형태성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 믿음이란 “몸과 그 형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단일한 것이다”라는 내용의 것이다.

[4] ‘건축과 도시공간 속의 신체’라는 주제에 대한 입문적 논의로서는 Richard Sennett, Flesh and Stone: The Body and the City in Western Civilization, NY, W.W. Norton and Company, 1994를 보라.

[5] 기본적으로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로부터 출발하여 그 이후, 브라이언 터너(Bryan Turner), 캐서린 갤러거(Catherine Gallagher), 토마스 래커(Thomas Laqueur), 에밀리 마틴(Emily Martin) 등의 이론가들에 의해, 몸, 문화, 사회의 상호연루 속에서 몸이 담론화하고 ‘담론적 몸(discursive body)’가 생산되는 과정이 논하여 졌다. 이들에 있어서의 ‘몸 정치학’, ‘몸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평적 설명으로는 다음을 보라: Anne Balsamo, Technology of The Gendered Body: Reading Cyborg Women,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6, pp.19-40

[6] Anne Balsamo, “Feminism and Cultural Studies”, Journal of the Midwest Modern Language Association 24, no.1 (spring 1991), p.64 (Mark Dery, Escape Velocity…, p. 237에서 재인용)

[7] Arthur Kroker, Technology and the Canadian Mind: Innis/McLuhan/Grant, New York, St.Martin’s, 1984, p.27 (Balsamo, 위의 책, p. 28 재인용)

[8] Frederic Jamer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정정호, 이소영 편, Postmodernism: An Introductory Anthology, 한신출판사, 1990,p.232(원전 New Left Review, No.146, 1984)

[9] 같은 책, 같은 페이지.

[10] Mark Dery, Escape Velocity…, p.243, 재인용.

[11] 같은 책, 같은 페이지.

[12] Donna J. Haraway, Simians, Cyborgs, and Women: The Reinvention of Nature, New York, Routledge, 1991, p.150

[13] 같은 책, p.152

[14] 같은 책, p. 174

[15] 같은 책, p. 162, 181

[16] Haraway, “The Actors Are Cyborg, Nature Is Coyote, and The Geography Is Elsewhere: Postscript to “Cyborgs at Large”, in Constance Penley and Andrew Ross (ed.), Technoculture, ‘Cultural Politics, Volume 3’, Oxford,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1, p.23

[17] J. G. Ballard, Crash, New York, Vintage, 1985, pp. 3-4.(Mark Dery, Escape Velocity…, p.245 재인용)

[18] Simians, Cyborgs, and Women…, pp.100-101

[19] Anne Balsamo, Technology of…, p.34

[20] Katherine H. Hayles, Chaos Bound. Orderly Disorder in Contemporary Literature and Science, Ithaca and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p.266 해러웨이는 우리가 이미 그러한 ‘후기인간’이 되어가고 있음을 선언한다: “20세기의 마지막 시점, 이 신화적 시대에서, 우리는 모두 기계와 유기체로 이루어진 키메라(Chimera, 그리이스 신화 속의 혼성괴물 -필자주)이고, 이론화된 잡종들이다. 즉 우리는 안드로이드, 사이보그인 것이다. 우리의 존재론은 사이보그의 그것이고, 사이보그는 우리의 정치학을 결정한다. 사이보그는 상상력뿐만 아니라, 물질적 현실의 압축된 이미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가지 중심의 융합은 모든 역사적 변형을 구조화 한다” (A cyborg Manifesto, p.150)

[21] 브랜윈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포괄적 설명을 덧붙힌다: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현대적 원시주의(귀뚫기, 문신, 신체변형)와, 그리고 인간의 몸을 후기인간적 가능성의 조건에 적합하도록 변형(morph)시키는 새로운 ‘기술신화(techno-mythology)’의 출현, 이 양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신화에서 인간의 몸은 해커들에게 열려있고, 인간성과 기술이 새롭고 활발한 관계 속에 짜여지는 그러한 조율점이 형성된다. ” (Gareth Branwyn, “The desire to be wired”, Wired, vol 1, no.4, september-october, p. 62)

[22] Marcos Novak같은 사이버 이론가는 ‘액체적 건축(liquid architecture)’라고도 규정했다.

[23] Alluquere Rosanne Stone, “Will The Real Body Please Stand Up?: Boundary Studies about Virtual Cultures”, in Michael Benedikt(ed.), Cyberspace First Steps, Cambridge, MIT Press, p. 109

[24] Olivier Dyens, “L’emotion du cyberespace”, in Louise Poissant(ed.), Esthetiques des arts mediatiques, II, p.399-400. 디엔스는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유명한 정보생태론적 개념인 ‘memes’를 빌려오고 있다.

[25] 같은 이, 같은 책, p. 400. 이러한 자기반영적 생태성, 혹은 타자로의 접합이 지니는 힘과 관련하여, 리오따르(J. F. Lyorard)가 라깡적 어조로 한 말을 예로 들어보자: “거울 속의 괴물이 그 어떤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고 칠 때, 보르헤스는 ‘재현하는 자’와 ‘재현되는 것’ 사이의 동형성(isomorphisme)이나 이형성(heteromorphisme)에 대해 사색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괴물들을 하나의 ‘힘’들로 상상한다. 그는 황제나 폭군이 일반적으로, 괴물들을 억압하고 그 투명한 벽 안에 가둘 때에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상상한다. 주체라는 존재는 이러한 칸막이 벽 안에서만, 그리고 반대편에서 단지 재현된 상태로 억압되어 있는 유동적이고도 치명적인 힘을 복속시킴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J.F. Lyotard, Assassinat de l’experience par la peinture, Monory, Paris, Le Castor Astral, p. 13)

[26] 맥루한이 말한 바 있다: “우리의 감각의 확장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즉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비율이 바뀔때, 인간도 바뀐다.” (Marshall McLuhan, The Medium is the Message: An Inventory of Effects, New York, Bantam, 1967, p.41)

[27] Mark Dery, Escape Velocity…, p.154-155

[28] Stelarc, “Prosthetics, Robotics and Remote Existence: Postevolutionary Strategies”, Leonardo 24, no.5, 1991, pp.591

[29] 같은 글. p.591

[30] Kristine Ambrosia and Joseph Lanz, “Fakir Musafar Interview”, in Apocalypse Culture, Adam parfrey(ed.), New York, Amok Press, 1987, p. 111 (Dery의 같은 책,p.167)

[31] Edmont Couchot, “Sujet, Objet, Image”, Cahiers internationaux de sociologie, 82 (janvier-juin 1987), p.85-98 (Olivier Dyens, “L’emotion du cyberespace”, p.410 재인용)

[32] David Rothenbert, in Catherine Richards and Nell Tenhaaf(ed), Virtual Seminar on the Bioapparatus, The Banff Center for the Arts, 1991, p.19

[33] Gilles Deleuze, Felix Guattari,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카프카론, 문학과 지성사, 조한경 역. 1992

[34] “동물변신, 그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동작을 가능하게 하며, 모든 가능한 도피선을 긋게 해주며, 문턱을 넘어서게 해주며, 오직 그 자체로 의미있는 연속적 응집성 속에 이르게 해준다. 동물 변신은 모든 형태, 모든 의미화, 기표 기의를 와해시켜서 비형태, 비영토화의 물결, 무의미의 기호에 자리를 내준다. 카프카의 동물들은 신화 또는 원형과 결코 관계하지 않는다. 카프카의 동물들은 오직 경사(傾斜)없는 밀도높은 자유영역과 조응한다. 그곳은 내용이 형태를 벗어버리고, 표현이 표현을 가능하게 한 기표를 벗어던지는 곳이다” (“소수문학…”, 28쪽)

[35] Gilles Deleuze, Nietzsche et la philosophie, Paris, PUF, 1962, p.41

[36] 같은 책, p.201

[37] 이 점에서 볼 때, 사이보그는 ‘항상 생성 속에 있는 존재’이며,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는 관점이 항상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38] 같은 책, 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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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sub.asp

* 박승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6-26 00:33)

인공생명 예술(Artificial Life Art) – 새로운 상호작용성의 미학

인공생명 예술(Artificial Life Art) – 새로운 상호작용성의 미학

조선령(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1. 서론 – 기호의 담론에서 ‘생물학적’ 담론으로

누군가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나 담론을 살펴보면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유전공학, 분자생물학, 인공생명 과학, 사회생물학 등 생물학 분야와 관련이 있거나 생물학에서 발전되어 나온 분야가 첨단분야로 각광받고 있으며, 복제양, 복제원숭이 등 복제생물이나 유전자 조작 작물에 대한 뉴스는 이제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이다.

지놈(genome) 프로젝트의 성과 이래 최근 생명복제에 관한 이슈는 복제가 가능한가에서 복제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윤리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오늘날 문제시되고 있는 ‘생물학적’ 담론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생물학과 상당히 성격이 다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인공생명(artificial life) 분야이다. 인공생명은 어디까지나 생물학의 분야가 아니라 공학의 분야이다.

하지만 인공생명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혹은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생명’이라고 말한다. 탄소화합물로 구성된 유기적 생명과는 전혀 다른 재료로 만들어져 있지만 무기적 생명체 역시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명에 대해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류일 수 있으며 생명은 다시 정의내려져야 한다는 시각이 담겨있다. 오늘날의 담론은 이처럼 생명과 비생명의 범주 혹은 정체성 자체를 뒤흔들고 있으며 양자를 결합 혹은 혼합가능한 것으로 사고하는 것, 그리고 생명과 비생명을 관통하는 자연의 법칙을 찾아내려고 하는 분위기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문과학에 있어서도 이러한 경향은 예외가 아니다. 라캉이나 푸코와 같은 이론가들은 일찍이 인간이란 개념에서 불변의 중심이나 본질을 제거하고 주체성이나 자아를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구조의 한 항으로 정의내린 바 있다. 그 이후 들뢰즈를 비롯하여 더욱 급진적인 후기 구조주의 이론가들은 인간을 ‘욕망하는 기계’라고 명명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인간의 특권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인간에게서 모두 박탈하고 있는 듯 보인다. 들뢰즈에게서 인간의 본질은 인식론적 측면에서 논의되는 주체성과 자아의 문제를 넘어서서 존재론적으로 확장된다.

그에게서 욕망은 결코 개체적이고 인격적인 것이 아니며 개체를 넘어서는 흐름이다. 아직까지 들뢰즈 이후의 후기 구조주의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구체적인 전망은 나와있지 않지만, 관심의 초점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음은 감지된다. 그것은 텍스트나 담론과 같은 기호학적 개념으로부터 물질적이고 실재적인 것에 대한 관심사로 향해가는 이동이다. ‘자연’과 ‘문화’ 사이의 심연을 구축하고 문화의 구성요소를 탐구했던 이론들은 이제 서서히 자연과 문화를 아우르는 더욱 거대한 시스템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른바 ‘생물학적인’ 담론으로 이행하고 있다.

20세기의 인문과학이 자연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의 자연과학은 더욱 더 자신의 테두리를 넘어서 철학, 사회학, 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이슈를 도입하고 자신의 담론을 전파해나가고 있다. 오늘날 자연과학의 담론들은 단지 테크놀러지적인 측면에서 사고의 가능성을 확장시켜주거나 도구적 차원에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인문학적 문제들이 제시되고 검토될 수 있는 하나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으며, 인간과 사회의 존재조건을 변형시켜 나감으로써 근본적인 인문학적 명제들을 재검토하게 만들고 있다. 예술 분야에 있어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도처에서 감지된다.

테크놀러지는 예술의 도구라기보다는 하나의 존재방식이 되어가고 있으며, 예술 내부에서도 세분화된 카테고리를 형성해가고 있다. 이 글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생물학적 담론 중에서도 특히 인공생명 과학 분야가 미술작품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그리고 인공생명을 다루는 미술작품이 갖는 의미와 전망은 무엇인가에 대해 간략히 서술해보고자 한다. 인공생명 과학은 그 내용적 혁신성, 급진적인 문제의식, 그리고 뛰어난 기술적 응용성으로 인해 고찰의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예술과 특히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본론 – 인공생명과 예술

(1) 인공생명 과학

인공생명 과학이 하나의 학문분야로 정립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미국의 산타페 연구소와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제1회 국제 인공생명 세미나가 개최된 것이 1978년이며, 국내에서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직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인공생명 과학이란 한마디로 살아있는 생명체의 특징을 가진 인공물을 창조하려는 과학의 한 분야이다. 인공생명의 가능성은 일찍이 폰 노이만이나 튜링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예견되어 왔으나. 그동안 하나의 가설로만 이해되었을 뿐이다.

특히 60, 70년대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분야의 발달에 상대적으로 눌려서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못하다가 90년대에서 와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그 방법론이나 내적 논리가 상당히 다른 분야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구성하는 근본 기제를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인공생명 연구자들은 다른 곳에서 접근한다. 그들은 우선 인공지능 분야가 일종의 하향식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점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의 두뇌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정교한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출발해서 인공지능을 만들려는 시도는 그 복잡한 시스템의 모든 하위체계와 작동방식을 다 알아야만 한다는 가정을 낳으므로, 문제는 어려워진다. 반면 인공생명 과학은 ‘상향식’으로 시작한다. 생명의 특성이란 뇌와 같은 복잡한 생명체가 가진 여러 가지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이들은 생명이란 아주 간단한 규칙을 가진 단순한 시스템의 복잡한 결합이라고 간주한다. 그 결과 시작이 간단해진다. 단순한 규칙을 가진 단순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은 내부의 규칙에 따라 엄청나게 복잡한 시스템이 되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 최종결과물을 미리 알 필요가 없어지며,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게 된다. 인공생명의 연구는 인공지능 연구와는 달리 자연의 구조를 밀접하게 연구한다. 자연은 외관상으로는 대단히 유동적이고 불규칙해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숨겨진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이며 시작부터 끝까지 미리 설정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이나 주변 조건의 변화에 따라 무한히 다양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스스로 구성해낼 수 있다.

또한 자연은 진화를 거듭하면서도 그 복잡성을 상실하지 않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연의 복잡성을 인공적으로 모방할 수 있게 해준 방법론적 토대 중 하나는 프랙탈(fractal)(주1) 수학이었다. 프렉탈 수학이나 카오스 이론과 같은 비선형계의 과학을 바탕으로 해서 인공생명 연구자들은 유전 알고리듬(genetic algorithm)(주2)이나 L-System(주3)과 같은 인공생명의 창조 방법을 고안해내었다.

인공생명 연구자들에 따르면, 생명의 본질은 탄소화합물로 만들어져 있는가의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조직화의 논리, 항상성의 유지, 진화, 자극에 대한 창조적 반응, 복잡성의 유지와 같은 일련의 특성에 있다. 생명은 수많은 무생물 분자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역동적인 물리적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컴퓨터로 구축된 가상환경 속의 생명체 역시 생명의 유비나 모방물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생명 과학에서 생명이란 ‘우리가 아는 바대로의 생명(life as we know it)’이 아니라 ‘가능한 바대로의 생명(life as it could be)’이다.

(2) 인공생명 예술

“인공생명 예술”이라는 말은 하나의 개념어로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이 글에서는 임시로 지칭해보자. 이젠에도 인공과 생명의 관계를 주제로 작업해온 작가들은 많지만, 인공생명 예술가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작가들의 새로운 특징은 단순히 그런 관계를 다룬다는 것에서 벗어나 인공생명 과학의 기술적 성과나 방법론, 그리고 가치관들을 곧바로 예술적으로 응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럼으로써 작가와 작품 사이, 관객과 작품의 상호관계에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는 점이다. 작가는 더 이상 작품의 창조가가 아니라 단지 전제를 깔아주는 사람이 되며, 관객과 작가의 구분 또한 흐려진다. 또한 작품은 전례없는 자율성을 획득한다.

인공생명 예술가들의 또다른 특징은 이들이 인간에 별로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생명이나 생태계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예술가들은 여전히 인간을 예술의 중심에 놓고 사고했다. 예를 들어 사이버스페이스를 다룰 때도 ‘실체 신체’와 ‘사이버 신체’간의 관계가 무엇인가 등을 논쟁의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인공생명 예술가들은 더 이상 실제 신체든 사이버 신체든 인간의 신체에 별 관심이 없다. 아니, 인간의 신체를 다룬다고 할 때도 그것이 휴머니티나 정체성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계 혹은 시스템의 일부로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이 웹에 상당한 친화도를 보인다는 점도 또 다른 특징이다. 인공생명 예술작품은 웹으로만 존재하거나 웹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많다. 불특정다수의 관객-작가에게 노출되면서, 그리고 웹이라는 비물질적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이들 작품은 우연히 관객에게 발견되어 접속되는 순간 존재가치를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들은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제레미 리프킨의 말처럼, 이들은 ‘접속’될 때 존재하며, 접속을 통해 자신을 구축해나간다.

예술작품 속에 복잡하에 사용되기 이전에 L-system이나 유전 알고리즘, 프렉탈 기하학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조형적 형태들은 무엇보다 자연의 구조와 형태를 모방하는 데 사용된다. 자연은 무한히 불규칙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눈의 결정을 확대해서 살펴보면, 일정한 규칙을 갖고 있다는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데 있어서 L-system이나 유전알고리즘은 매우 효과적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것들은 그냥 정교한 그래픽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형태들은 ‘그려낸’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미술작품으로 응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최초의 규칙만을 주었을 뿐이며 말하자면 작품 스스로가 그 규칙에 따라 보다 복잡한 계를 형성해간 것이다. 컴퓨터를 미술작품 제작에 이용하는 사례는 오늘날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이전의 것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보다 이 컴퓨터를 부분적인 도구로 이용한 차원이 아니라 작품생산의 환경 혹은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프랙탈이나 유전알고리즘을 이용한 작업들은 Generative Art, Fraxtal Art, Evolutionary Art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면서 특정 장르를 이루기도 한다.

또한 정지영상 혹은 평면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경우와 동영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자는 흔히 회화처럼 취급되고 후자는 흔히 웹아트나 영상설치 작업으로 제시된다. 동영상(을 포함한) 작업들이야말로 인공생명 예술의 새로운 특징을 확실하게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이다. 인공생명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부분 어떤 고정된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계를 형성하는 과정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은 대부분 관객 혹은 접속자가 참여하게 되어 있으며, 참여를 통해 그 복잡성을 증가시켜간다. 작품은 자연의 생태계가 그러하듯이, ‘번식’되어가고 ‘진화’되어 가는 것이다.

인공생명 예술은 대체로 미술의 담론 속에 많이 편입해있는 개별 작가들의 작업과 집단적인 웹 프로젝트 성격의 작업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공생명 예술이라는 뚜렷한 장르가 정착한 것은 아니며, 미술담론에 완전히 포함되었다고 부르기 어려운 작업들도 다수 있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타 소모러와 로랑 미뇨노(Christa Sommerer & Laurent Mignonneu) 는 미술적 맥락에 많이 몸담고 있는 작가들로 꼽을 수 있다. 일본의 Art Media Integration and Communications Research Lab의 연구원이기도 하며 인공생명과 예술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한 이들은 1992년부터 함께 작업을 해왔다.

이들은 인공적으로 생태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서 생명과 거의 유사한 기능을 가진 인공 생명체들을 기르고 창조해내는 인터액티브한 영상 설치 작업을 보여준다. 이들의 작업은 관객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계속되어가는 것이 많으며, 어떤 고정된 결과물로 제시되는 것들이 아니다. 또한 이들이 만들어낸 생태계는 관객의 조작에 소극적으로 반응할 뿐 아니라 스스로 취향과 의지를 가지고 환경에 적극적, 유동적으로 반응한다.

예를 들어 영상설치 작업 (1999)에서는 관객이 키보드를 두드려 특정한 알파벳을 영상에 출력해내면 그것이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이 생명체는 자기를 탄생시킨 알파벳만을 먹이로 먹으며, 다른 알파벳을 주면 먹지 않는다. 그리고 이 생명체들은 스스로 움직여다니고, 짝을 짓고, 죽어가고 진화하면서 자신들만의 생을 영위한다. 이 작품이 관객과 맺는 상호작용은 단순한 반사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복잡하고 동기화된, (말하자면 생명체와 유사한) 작용이다.

설치작업과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업을 병행하는 칼 심즈(Karl Sims)는 퐁피두 센터에서 전시되기도 한 영상설치 작업 (1993)로 널리 알려지게 된 또 다른 인공생명 예술가이다. 는 진화라는 자연계의 과정을 예술적으로 응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16개의 모니터가 아름다운 컴퓨터 그래픽을 보여주는데, 관객은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미지 앞에 서게 된다. 그러면 센서가 작동하고 컴퓨터가 연산을 시작하여 선택된 이미지의 ‘자손들’을 모니터에 보여준다. 선택되지 못한 이미지들은 사라진다. 이 ‘자손들’은 ‘조상’의 단순한 카피가 아니라 알고리듬에 의한 복잡한 변형을 거친 것들이다.

이미지들은 아버지를 닮은 것들도 있고 다르게 생긴 것도 있으며 완전한 돌연변이도 있다. 이 이미지들 중에서 관객은 또 선택을 할 수 있으며, 다시 이 과정이 되풀이된다.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진화의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복잡성도 증가한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마치 창조주처럼 도태될 개체와 선택될 개체를 판단함으로써 자연의 과정처럼 종의 진화형태를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심미적 관점에서 이루어진다(가장 아름다운 것을 선택). 이 작품은 관객(인간)의 미적 감각과 작품 자체(컴퓨터)의 창조적 능력에 의해 진화하는 하나의 계를 형성해나간다.

예술가이자 웹사이트 기획자 혹은 개발자로 활동하는 작가중에는 제인 프로핏(Jane Prophet)이 있다.런던 웨스트민스터대학(University of Westminster London) 미디어학 교수로 있으며 유명한 ‘테크노 스피어(TechnoSphere)’ 사이트를 기획하기도 한 그녀는 설치형태로 된 작업과 함께 웹 아트적인 작업을 병행한다. 그녀는 최근에는 인터액티브한 내러티브와 사이보그 신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스웜'(swarm. http://www.ucl.ac.uk/slade/swarm)은 웹 아트 작업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벌들의 무리가 이동하면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곡선을 유전 알고리듬에 의해 보여준다. 접속자가 마우스를 이동하는 데 따라서 이 곡선의 모양이 변화한다. 그러나 마우스가 이 무리들을 이끈다기 보다는, 마치 실제 꿀벌들이 꽃에 접근하듯이, 마우스를 따라서 무리들이 움직여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곤충의 무리라는 형태가 갖는 특성, 즉 개체를 넘어선 융합, 그리고 끊임없는 흐름 혹은 과정이라는 면에 관심을 갖고있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UCLA의 교수인 미디어 아티스트 레베카 알렌(Rebecca Allen)도 미술담론과 미술외적인 담론을 넘나드는 작가라고 할수 있다. 그가 프로그래머들과 공동으로 만든 컴퓨터 시스템 “emergence’를 이용한 작품 은 인공생명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무엇인지 질문하려는 의도를 갖고있다.
‘테크노 스피어(TechnoSphere)’나 ‘너브 가든(Nerve Garden)’과 같은 사이트들은 공동 웹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들 프로젝트는 웹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며, 그만큼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에 있어서는 한층 더 넓은 저변을 갖는다. 가상의 생태계 테크노스피어(http://www.technosphere.org.uk)에 접속한 관객-접속자는 자신의 이 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생물체를 만들어 가상의 생태계에 풀어놓을 수 있다.

준비된 생물체의 부분들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여 조합하고 초식생물이냐 육식생물이냐도 정할 수 있다. 이 생물체들은 생태계 속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먹고 짝을 짓고 번식하며 살아간다. 생물을 풀어놓은 사람은 수시로 여기 와서 자신의 생물이 얼마나 자랐고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검색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물체들로부터 수시로 근황을 알리는 메일을 받게 된다. 이 사이트는 기획자인 제인 프로핏 외에도 많은 엔지니어들과 프로그래머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다.

‘너브 가든(http://www.biota.org/nervegarden)은 3D 디지털 식물들을 웹상에서 키울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너브 가든이라고 명명된 가상의 섬에서 접속자들은 그곳에 여러 종류의 식물들을 심고 그들이 자라가는 상황을 볼 수 있다. 이 가상의 정원은 DigitalSpace Corporation의 최고 경영자이며 Contact Consortium의 이사인 브루스 다머와 토드 골드바움에 의해 기획되었으며, 가상세계에서 생명체를 체험하게 하는 프로젝트 그룹 Biota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너브 가든 속의 생명체들은 환경과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스스로 생장, 증식, 진화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현실의 자연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기능면에서는 유사한 생태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인공생명의 또 다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Fusebox Artists의 웹 프로젝트 ‘Temple of Alife'(http://alife.fusebox.com)는 접속자의 촉매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면서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프로그래밍 작품들을 웹상에 올려놓고 있으며, 접속자로 하여금 “생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존의 목적은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져보게 하고 있다. 첫화면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들의 관심사는 사용자와 컴퓨터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만이 아니라 컴퓨터 시스템 내의 상호작용이다.

한국에는 아직 인공생명 예술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없다고 봐야한다. 물론 인터넷상의 아마추어적 작업이나 기술적인 테두리 안에서 제작된 인공생명체들은 있지만, 미술의 담론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인공생명 예술의 방법론적인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지는 않더라도 환경과의 적극적인 반응, 작품이 주체가 되는 상호작용성 등 인공생명 예술의 미학을 반영하는 작가들은 그 숫자가 적긴해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최우람 같은 작가는 주제나 목적의식에 있어서는 인공생명 예술에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작업은 웹아트이거나 영상설치는 아니고 전통적인 조각에 가까우며 오히려 로봇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지만, 기계를 또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하고 있으며 기계적 생명체의 창조를 작업의 테마로 하고 있다는 점, ‘기계 생명체’가 우리의 문명에 대해 가지는 새로운 의미와 존재양식을 정립함으로써 생명 개념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생명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의 통상적인 관념에 균열을 내고 있다.

또한 한 인터넷 갤러리(http://gallery.zegob.co.kr/)에 전시되었던 김수정의 ‘DOT’ 시리즈도 초보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인공생명 예술에 근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DOT’ 시리즈는 점이라는 단순한 조형적 요소를 이용해서, 한편으로는 디자인적인 구성을 펼치면서 한편으로는 이 점들의 자유롭고 임의적인 운동이 만들어내는 형태들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접속자는 마우스를 이용해서 이 점들을 드래그하거나 클릭할 수 있는데, 이를 촉매로 해서 ‘점들’은 아름다운 패턴을 그리면서 이동한다.

3) 인공생명 예술의 미학

인공생명 예술작품들은 때로 오락이나 시뮬레이션과 유사해보이며, 예술이라고 부를 만한 특징들을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의 상당수는 예술이냐 아니냐를 그렇게 엄밀하게 따지지 않으며, 굳이 예술임을 내세우지 않고 게임과 예술의 경계선에서 오가는 작업들도 많다. 그러나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은 분명 존재한다고 보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작업이 예술일 수 있으려면(적어도 스스로를 미술담론 안에 위치시키는 경우에는) 그것이 일종의 메타 기능을 할 수 있을 경우라고 본다.

다시말해 인공생명 예술은 인공생명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문화적 담론과 인식에 대한 일종의 발언 혹은 비평으로 작용할 경우에만 예술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메타 담론은 어떤 식이든 우리에게 미학적 카테고리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미술이론가이며 작가인 사이먼 페니(Simon Penny)는 ‘Dawin Machine: Artificial Life and Art”라는 글에서 인공생명 예술의 미학적 특성을 두 가지로 들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상호작용성과’ ‘미메시스’이다. 상호작용성(interactivity)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고 포스트모던한 미술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인공생명 예술에서 상호작용성은 기존의 상호작용, 즉 관객과 작품 사이의 상호작용성과는 상당히 다른 점을 갖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것은 한마디로 작품 스스로가 주인공이며 관객은 보조자 내지 촉매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상호작용의 성격이 전혀 미리 정해져있지 않으며 매번 다른 변수에 의해 다른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한 작품에서 중요했던 것은 관객이 ‘참여한다’는 그 자체이며, 그 참여의 현존성으로부터 새로운 시공간의 미학이 탄생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인공생명 예술에 관객의 역할은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한 작품 앞에서 관객의 주체성은 해체되고 재구성된다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인공생명 예술에서 주체성이란 이미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출발점 자체가 인간의 내면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 차원, 즉 환경, 구조, 혹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내면을 다룬다는 것은 어떠한 예술이든 예술의 목적 중 하나지만, 이 경우는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논의된다. 인간의 내면은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 속에서만 존재하고 변형되며, 그래서 초점은 결과물보다 결합방식에 가 있다. 인공생명 과학에서 다루는 생명체는 지적능력만을 가질 뿐 감정을 결여한 로봇이 아니라 감정 역시 완벽하게 갖춘 존재이다. 인공생명 예술에서 감정이나 정서는 불가해한 그 무엇이 아니라 시스템의 특정한 결합방식이다.

그리고 관객 혹은 접속자의 의도나 정서적 반응, 가치판단과 같은 요소들은 작품 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이 요소들이 결합되는 방식 자체가 작품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주체와 객체 간의 이분법은 여기서 와해되며, 그것도 포스트모던한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과도 상당히 다른 방법으로 와해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여기서 관객이란 일종의 재료일 뿐이며, 진정한 주인은 시스템 자체이다. 이 새로운 상호작용성의 미학은 이미 우리를 둘러싼 인공적 환경이 인간을 규정하기에 이른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작품은 인간의 선험적 자아를 해체하고 주체성을 전복시킴으로써 인간중심적 사고에 균열을 내는 데 일조했지만, 인공생명 예술은 인간성이나 인간적 세계 역시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가치를 폄하한다는 비판의 시각도 나올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중심주의가 가져다준 각종 폐해에 대한 효과적인 교정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인공생명 예술의 시스템 속을 구성하고 그 요소들을 서로 결합하면서 흘러다니는 그 무엇을 들뢰즈식으로 ‘욕망이라고 말해본다면, 이 ‘욕망’의 진정한 주체는 관객도 작품도 작가도 아니다. 들뢰즈는 욕망을 인간적인 것으로 사고하는 데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페니는 인공생명 예술의 또 다른 미학적 특질을 ‘미메시스(mimesis. 모방)’라고 말한다. 예술이 자연의 미메시스라는 것은 플라톤 이래 오래된 미학사의 테제였지만, 현대에 와서 그 경구의 인기는 시들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페니는 미메시스는 짧은 모더니즘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미술의 중심과제였으며, 이제 새로운 미학의 중심테마로 복귀했다고 주장한다.

‘예술은 제 2의 자연이다”라고 하는 명제는 그리스 시대의 미술이나 인공생명 미술이나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시되는 미메시스는 외관의 미메시스가 아니라 내적 논리의 미메시스이다. 이 역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자연의 외관을 그대로 본따는 것을 미메시스라고 부르지 않았다. 적어도 우수한 미메시스라고 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인공생명 예술의 미메시스는 자연의 외관에 대한 것이 아니라(예를 들어 테크노스피어의 생명체들은 전혀 유기체적인 외관을 갖고 있지 않다) 자연의 내적 구조나 작동원리의 미메시스이다.

그것이 고대미술에서부터 미술이 지향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였던 것처럼, 인공생명 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이상화된 자연, 보편적인 자연의 구조를 모방한다. “가능한 바 대로의 자연”은 그래도 인공생명 과학의 모토이자 인공생명 예술의 모토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인공생명 예술은 어떤 측면에서는 근대를 뛰어넘어 다시 고전적인 세계관 속으로 복귀하는 듯한 측면마저 있다. 기호적 세계와 자연적 세계 간의 넘을 수 없는 간격 대신, 인공생명 예술은 그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세계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인공생명 예술이 갖고 있는 자연의 개념은 유기체적 자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기체적인 자연을 포함한 개념이다. 무기적인 자연은 유기적인 자연의 그림자나 부속물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자연이며, 이 매크로한 자연 속에서 유기적인 것(관객 혹은 접속자)과 무기적인 것(프로그래밍된 인공생명체)은 혼합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서로를 만들어낸다.
인공생명 예술에서 또 하나 논의해야 할 것은 작가의 위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작가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수용자에 의해 계속해서 새롭게 읽혀지는 텍스트로서의 작품을 내세웠다. 인공생명 예술에서도 작가는 한편으로 창조자의 위치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가 작품에 완결된 의미를 부여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만이 아니라 작품이 작가 없이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구성된다는 점에서 나온다.

작가의 역할은 단순히 작품이 움직일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해주는 것 뿐이다. 그리고 전문적인 테크놀러지의 도움없이는 많은 경우 작품이 구상되기 힘들기 때문에 작가들은 종종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며, 1인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형태는 거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의 위치는 매우 축소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반대로 작가의 위치가 아주 격상된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작가는 하나의 세계가 구성되고 영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의 모든 부분을 하나 하나 창조하지는 않지만, 작품이 살아갈 수 있는 세계 자체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 개념을 연상케한다. 작가는 엔지니어이며 프로그래머이고 예술가이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창조주’이다.

3, 결론

Fuse Box Artists, “Temple of A-life”

새로운 상호작용성의 미학을 갖는 인공생명 예술은 인간의 주체성을 넘어선 거시적 세계, 미메시스에 의해 재현된 자연의 구조를 표현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공생명 예술은 좁은 의미의 인간적 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을 담아내는 매우 철학적인 장르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작품이 많지는 않다고 보인다. 다시 말해 현재 예술적 차원에서 제대로 메타 담론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의 수는 많지 않으며 아직은 테크놀러지를 도입하고 실험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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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테크놀러지에 대한 기계론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는 작가들이 조금씩 눈에 띠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인간이나 문명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기해주는 뛰어난 인공생명 예술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인공생명 예술에 대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몇 가지 비판을 검토해보자. 우선 예술을 오락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이것은 방금 말한 것처럼 아직 그 예술적 성과가 무르익지 않아서 나오는 문제점이지 인공생명 예술 자체가 오락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인간적 가치나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인공생명 과학이 생명에 대해 가지는 태도는 생명이 단지 기계적인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것이며, 생명의 개념을 확장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인공생명 예술 역시 마찬가지의 지향점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인공생명 과학자들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정답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 바이러스는 생명인가? 그 왕성한 번식력과 자기보존의 능력, 항상성 유지의 능력은 분명 생명의 특징을 연상시킨다. 한편으로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생명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인간이 갖는 생명으로서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가능한 것이다. 또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어떤 불변하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며 인간성이나 인간의 감성, 감각 역시 변화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 나아가서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의 관계 없이 인간의 본질을 논한다는 것은 불충분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는 주장에 동의해볼 수도 있다면,
인공생명 예술의 미래가 가질 수 있는 미학적, 사회적, 철학적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을 지도 모른다.

(주). …………………………………………………………………………………………………………………………………

1. 프랙탈(fractal) : 만델브로트에 의해 발견된, 비선형계에서 나타나는 현상. 무한하게 세분되고, 무한한 길이를 가지며, 정수가 아닌 분수 차원을 갖고 있고, 규모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스스로 닮아가며, 간단한 반복작용을 계속하여 간단히 만들어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프랙탈 기하학은 무한과 혼돈을 표현하는 새로운 기하학이다.
2. 유전 알고리듬(Genetic Algorithm) : 존 홀랜드(Holland)에 의해 창안. 자연도태의 과정을 기계에 작용시키는 기법으로, 환경 속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놓은 기계의 변형을 기계의 집단으로부터 생생서키는 방법이다. 알고리듬은 잘 정의된 처리 절차를 유한단계의 과정으로 나열한 것을 말하며 수학의 귀납적 규칙이 그 본보기이다. 알고리듬이 적용된 가장 간단한 예는 제곱수의 집합이다.(0, 1, 4, 9, 16..) 알고리듬이 반복될 수록 시스템은 무한하게 커지고 복잡해진다.
3. L-Systehm: 린덴마이어가 60년대에 고안해낼 수학적 모델로써, 발달과정에 있는 세포의 상호작용을 나타내기 위해 고안되었다. L 시스템은 기호의 연속체를 다시 써나가는 규칙의 집합체로 구성된다.
(이 용어해설들은 이인식 저, 사람과 컴퓨터(까치, 1992)에서 인용함)
(참고문헌)Amy M. Youngs, “The Fine Art of Creating Life”, Leonardo, vol. 33, no. 5, 2000, pp. 377 – 380
Simmon Penny, “The Darwin Machine, Artificial Life and Art”, New Formations, no. 29, fall 1996
이인식 저, 사람과 컴퓨터, 까치, 1992

출처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sub.asp
* 박승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6-26 00:33)

키네틱 아트

1. 키네틱 아트의 개관

움직임을 중시하거나 그것을 주요 요소로 하는 예술 작품을 말함. 옵 아트 등의 시각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과는 달리,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또는 움직이는 부분이 조립된 것 등을 포함함. 따라서 작품은 거
의가 조각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 이러한 경향은 미래주의와 다다이즘에서 파생된 것으로 최초의 작품의 예
로는 마르셀 뒤샹이 1913년에 자전거 바퀴를 사용하여 제작한 <모빌>이라는 조각을 들 수 있음. 그 후 1922
년 나움 가보가 <키네틱 조각>이라는 이름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그 후 모홀리 나기는 이런 일련의 움직이
는 작품을 키네틱 아트라고 불렀음. 이 후 현재까지 이런 범주에 드는 작품들이 꾸준히 의 식적으로 제작되
고 있음.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는 용어는, “움직임”을 의미하는 “Kinesis(=movement)”와 “Kinetic
(=mobil)”라는 그리스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듯이, 움직임을 본질로 하는 미술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되었
음. 프랑스에서는 역시 같은 어원의 시네티즘(C inetism)이라는 용어로 이러한 미술을 지칭함. 움직임을 본
질로 하는 미술은 실제로 움직이는 작품과,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이
는 작품 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음. 옵 아트(OP ART)와 지각적 추상 (PERCEPTUAL ABSTRACTI ON)은 후자
의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움직임의 시지각적 현상을 강조하는 용어임. 키네틱 아트는 주로 실제로 움
직이는 작품을 일컫지만, 옵 아트나 지각적 추상이라 불리는 경향까지도 포함하는 가장 포괄적이고도 또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임. 미술사상 움직임의 요소는 그림이나 조각의 한 요소로서 흔히 거론되어 왔으
나 “움직임” 자체가 작품의 본질로 설정된 것 은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한 키네틱 아트(KINETIC
ART)에 의해서임.
키네틱 아트의 등장을 가능케 한 20세기 초기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우선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화를
들 수 있음. 금세 기 초 미래주의, 구성주의, 바우하우스(Bauhaus)운동은 예술에 있어 기계를 미학적 요소
로 수용하였고, 다다(Dada)와 초현실주의 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문명비판의 은유적 방법으로써 기
계를 도입했음. 또한 입체파와 미래파는 그들의 비원근법적 공간 개념을 4차원의 과학적 개념과 연관시켰
음.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주의자들은 움직임의 미를 찬양했고, 1909년 마리네티(Tommaso
Marinetti)가 「미래파 선언」을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조화, 비례, 통일의 전통적인 미의 형식을 타파하
고, 현대의 특징인 속력, 기계의 다이나미즘과 소음, 소란을 현대의 징표로 생각하고, 분석적 큐비즘을 도
입하여 대상을 해체하였는데, 큐비즘에서 처럼 정적인 것이 아닌 동 적인 감각의 표출을 통해 역동성을 강
조한 것이 구성주의와 함께 키네틱 아트를 태동시킨 계기가 되었음.
“키네틱”이라는 단어가 조형예술에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20년의 일임. 키네틱 개념은 미래주의자들과 실제
적인 움직임을 암시하는 구성주의와 다각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처음으로 제안되었음. 1920년 나움 가보
(Naum Gabo)와 페브스너(A ntoine Pevsner)에 의해 발표된 「사실주의 선언」에서 그들은 “미래주의는 순전
히 시각적인 영상을 캔버스에 정착시키려는 노력에 불과했다. 순간적으로 포착된 움직임의 단순한 그래픽
적 기록만으로 움직임 그 자체를 재창조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라고 미래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가장 명
백하고도 강력한 표현으로 키네틱 아트의 개념을 밝혔음. 또한 가보는 “구성주의 조각은 3차원이 아니다.
여기에 시간의 요소를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는 한 그것은 4차원이다. 그러므로 키네틱 조각은 시 간의 개념
이 도입되면서 나타나는 움직임, 리듬, 즉 조각이나 회화에서 선과 형상들의 흐름을 통해 지각되는 환영적
인 것 뿐 아 니라 실제적인 움직임을 포함한다. 예술작업에서의 리듬은 공간과 구조 그리고 이미지만큼이
나 중요하다.”라고 하여 “움직임”을 조각의 한 요소로 보았음.
이러한 이론들은 1922년 Alfred Kemeny와「역동적-구성적 형태의 체계에 관한 선언문(Men ifesto on the
System of Dynamic Constructive Form)」을 발표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Nagy)에 의해 또 다른 방향
에서 연 구 개발되었음. 모홀리 나기는 선언문에서 “우리는 고전적 예술의 정적 원리를 보편적 예술의 동
적 원리로 대체해야 한다. “고 주장하였는데, 그의 의도는 재료와 형태사이의 관계를 포함하는 전통적 정
적 형태를 힘과 구조의 관계에 근거를 둔 동적 구조로 대체하는 것으로, 그는 움직임이야말로 키네틱 아트
에서 다루어져야 할 핵심적인 요소로 깨닫고 작품에서의 움직임의 요소를 강조하였음.
모홀리 나기의 작품이 갖는 움직이는 힘은 원형 그 자체보다는 반영(Reflection)에 더 의존하였으며, 이러
한 종류의 실험은 1960년대 본격적인 키네틱 작업을 시도한 니콜라 쇠페르(Nikolas Schoffer)의 작업으로
이어졌음.
실험적인 키네틱 경향은 1913년 이후 1925년 경까지 괄목할 만한 주목을 받아오다가 서서히 퇴조 현상을 보
여 30년대, 40 년대에는 소수 작가들에 의한 작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체 상태에 있다가 1950년에 들어서
면서 다시 부활하기 시작하였음. 키네 틱 아트는 1955년 파리 드니즈 르네 화랑에서 열린 <움직임>전과 그
선언문을 계기로 하나의 집단적 경향으로 확립되기 시작하여, 60년대에 비로소 키네틱 아트라는 풍부한 내
용의 미술양식으로 등장하게 되었음. 1965년 뉴욕 현대 미술관의 <반응하 는 눈>전, 1967년 파리 시립 현
대 미술관에서 열린 <빛과 움직임>전 등 많은 국제전이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개최되었 음. 키네틱 아트는
1972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열린 <키네틱 아트 국제전>을 고비로 점차 쇠퇴하게 되었음.
1960년대의 빛, 움직임, 소리로 대표되던 키네틱 아트의 미학적 요소에 의한 구성대신에, 물, 안개, 연기,
불, 생물적 요 소를 포함하는 일종의 생태학적 방법론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음. 또 한편으로는 커뮤니
케이션 미디어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비디오 아트, 레이저 아트, 홀로그래피 등의 첨단적 기술로 접근해
가는 미술가들도 나타나고 있음. 이러한 변모에서 특징을 이 루고 있는 것은 기계 장치의 운동에 역점을 두
었던 키네틱 아트가 1920년에서 1960년까지로 종말을 고하고, 기계의 운동 자체보 다는 그 영향에 의한 여
러 가지 효과와 결과에 주안점을 두는 키네틱 아트로 옮겨간 것임. 키네틱 아트는 이제 “움직이는 환경” 이라는 현대 사회의 도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미술과 사회 또는 미술과 생활의 접근이라는 의미로 종종 해석되고 있음.

2. 키네틱 아트의 조형성
추상미술 전반, 특히 구성주의와 마찬가지로, 키네틱 아트는 인체를 작품의 척도로 삼는 지금까지의 보편적 방법을 사용 하지 않고, “척도”라는 개념이나 의미를 무시하고 있음. 일반적으로 키네틱 아트는 추상적이고 규모 감각이 결여된 체계가 특징적이며, 시간 개념이 첨가된 사차원의 미술이라 할 수 있음. 키네틱 아트의 구성 요소로는 시간, 움직임, 우연성 등을 들 수 있으며, 시간의 측정에 있어서는 시간의 “간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키네틱 아트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의 모든 단계는 인간의 인지 한계 내에 있음. 키네틱 아트의 움직임은 세 개의 축을 따라 움직이는 선적인 운동, 그 축을 중심으로 한 회전, 작품밖의 중심축을 따른 회전 등 모두 아홉 가지임. 진동은 종류가 다른 움직임이긴 하지만 방향상 아홉 가지 기본 움직임 중 하나라 할 수 있음. 움직임은 재료와 구조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 움직임에 의해 움직이기 직전과 이후의 형태의 변화는 기억과 예측의 문제이며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의 오브제가 아니라 드라마다. 움직임의 법칙이 너무 명백하여 그 형태가 예측 될 때에는 지루한 작품이 되며, 움직임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면 이는 기계적인 작품이며, 최초의 형상이 반복되는 현상은 독창적 예술이 아닌 복제품이라 할 수 있음. 이러한 키네틱 아트의 조형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됨.

역동성
선과 미묘한 형태가 조합되어 천천히 흔들리는 칼더의 모빌처럼 “움직임 자체”를 표현 양식으로 도입하여 움직임의 조형미를 추구함. 일정한 시간의 개념이 첨가되면서 움직이는 힘이 작품의 중요 요소로 작용됨.

시지각성
오브제의 시지각상의 움직임이나 실제의 움직임, 때로는 관찰자의 움직임에 의해 긴장감이나 놀라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특성으로, 다시 말해 오브제의 움직임에 의한 커다란 시각적 효과와 함께 시지각을 통한 착시적인 효과 , 관찰자의 보는 위치에 의한 형태의 변화등 시지각성이 작품의 의의를 갖게함. 시간에 따라 일정한 형태가 변형되므로서, 관찰자의 시지각을 자극하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특징을 가짐. 또한 투명한 유리판을 일렬로 늘어 놓아 관찰자가 이동함에 따라 현광 필름으로 씌워진 유리판에 화려한 색채의 변화가 나타난다던지, 혹은 명도가 비슷한 현란한 보색을 병치시켜 눈부시고 현기증 나는 시각적 움직임을 산출해내는 것 등도 있음.

변형성
움직이는 바퀴의 살이 사라져 보이는 것처럼 오브제의 빠른 움직임에 의해 형태가 변형되어 보이거나 비물질화되는 것을 말함. 또는 아감의 작품과 같이 대상이나 관람자의 움직임에 의해 작품 자체에 풍부한 변화가 생기는 것도 여기에 해당됨. 아감의 작품은 골이 패인 단일한 표면에 사용한 다양한 색채로 인해 관람자가 이동함에 따라 서로 다른 구성 형태가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변형성을 미적인 요소로 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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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 / 미술사전

플럭서스 ( FLUXUS )

미술사전

“플럭서스(FLUXUS)”는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로 1960년 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 전위예술운동이다. 이 용어는 1961년 뉴욕의 갤러리 A/G에서 행한 일련의 강연회를 알리는 초청장 문구에서 조지 매키우너스가 처음 사용했으며 여러나라의 언어에서 ‘흐름’이나 ‘변화’란 의미를 내포하는 플럭서스 미술은 양식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에 가깝다. 독일에서 시작되어 뉴욕과 북구의 수도인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으며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도 비슷한 활동이 독자적으로 펼쳐졌다. 이 운동은 대중문화에 의존하지 않고 아방가르드 미술가와 음악가와 시인들이 창조해 나갈 새로운 문화를 추구했으며 게릴라 극장과 거리 공연, 전자음악 연주회 같은 초기의 플럭서스 이벤트는 1960년대와 연결지어 생각되는 성적 충동과 무정부주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플럭서스 미술가에게는 사회적 목적이 미적 목적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의 주된 목적은 부르조아적인 판에 박힌 미술과 생활을 혼란시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예술형식과 스타일을 벗어난 예술가들의 생각 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계획되었던 잡지의 제목으로서 매키어너스가 선택했다. 그 잡지는 발행되지 못했지만 플럭서스란 명칭은 1962년 매키어너스가 비스바덴에서 조직한 최초의 콘서트 시리즈인 <새로운 음악>에서 처음 사용되어졌다. 플럭서스는 미래파나 다다이즘, 또는 초현실주의와 같이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하나의 심리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조직적 화가 집단이라기 보다는 예술 시장과는 거리가 먼 예술가 개개인과 아웃 사이더들이 모인 지극히 자유로운 집단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해 낸 행위와 창조성의 형식들은 오늘날 당연히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생긴 것이다.

1964년 부터 플럭서스는 베를린에 확산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서유럽에서 있었던 초기의 플럭서스 페스티발들이 끝난 다음 이었다. 당시 서베를린의 문화적 상황은 겉으로는 개방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상상력의 빈곤에 빠져 ’20년대의 황금기’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전주의적 취향의 문화를 지향하며 학문적인 지방예술을 답습하고 있어서, 플럭서스의 출현은 실로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플럭서스 예술가의 대부분은 뉴욕(New York) 소호(Soho)지구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1963년에 조지 매키어너스(Geo rge Maciunas)가 플럭서스의 본부를 창설했고, 딕 히킨즈(Dick Higgins)는 유명한 썸씽 엘스 프레스(Something Else Press)를 창설하여 1964년부터 1974년까지 중요한 플럭서스의 책들을 발간하였다.

유럽의 주요한 플럭서스 중심지에서는 플럭서스 페스티발 후에 콘서트나 전시회가 따르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베를린의 경우에는 그 순서가 역으로 진행되었다. 즉, 플럭서스 예술가들에 의한 단독 저녁 집회들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큰 규모의 페스티발로 발전되었고 마지막에는 매키어너스(Maciunas) 자신이 조직한 1976년의 <플럭스 합시코드 콘서트>로 절정을 이루었다.

1964년 이래 플럭서스란 이름으로 불려진 현상은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이렇게 각기 다른 대륙과 도시에 사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사이의 몇몇 여행가들에 의한 전파나, 이제껏 만난 적이 없었던 예술가들 사이에 편지에 의한 교신으로 가능했으므로, 우편은 개념을 전세계적으로 교환하기 위한 매체가 된 것이다.

레이 존슨 같은 플럭서스 미술가들은 ‘우편 미술’을 시도했는 데 이는 우편 제도를 전달 방법으로 이용하는 미술로 엽서형태의 콜라주와 그 밖의 소규모 작품을 예로 들 수 있다. 플럭서스에서 탄생시킨 또 다른 미술은 때로는 우편 미술과 협력하여 행해지는 ‘고무도장 미술’이다. 즉, ‘메일 아트(Mail Art)’와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이 태어났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개념미술은 뉴욕에서 맥로우와 영이 매키어너스를 위해 편집한 ‘앤솔로지(An Anthology)’와, 쾰른에서 보스텔이 만든 ‘데꼴라쥬(De-coll/age)’잡지 등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플럭서스 미술가들의 전형적인 제작 방식은 다양한 재료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이었으며 많은 미술 형태가 동시에 그리고 불협화음 처럼 전개되는 플럭서스 이벤트는 동시대에 등장한 액션이나 후에 나온 해프닝과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보다 유머러스하고 개방적인 경향을 특징으로 한다. 플럭서스 이벤트는 산책하거나 나무를 태우는 단순한 동작에서부터 미니 텔레비젼으로 만들어진 브래지어외에는 거의 걸친 것이 없는 샬로트 무어맨이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무어맨과 백남준의 공동작품과 같이 대중의 관심을 끈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플럭서스는 공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러나 플럭서스의 첫 출현 이후 25년이 지난 1987년 현재에 이르러서도 미술가들은 플럭서스를 이해하는데 혼란을 겪고 있는데, 그것은 플럭서스가 일정한 범주로 제한되거나 목록화 할 수 없기 때문임. 플럭서스를 이끌어 나가던 많은 작가들은 플럭 서스에는 어떤 하나의 목적이나 방법이 없으며 공통점이 있다면 이제까지의 예술과 몇몇 낡은 기존의 범주들이 더 이상 쓸모없어 졌다는 깨달음일 것임. 이러한 공통점을 가진 개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 서로 협력했던 것을 플럭서스라 할 수 있다.

플럭서스의 초기 이벤트들은 비교적 극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로 극적, 허구적 요소가 삭제되어가면서 구체적이 고 실제적인 시공간을 강조하는 매우 단순한 개인적 행위로 환원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예술과 현실사이의 간격을 없애고자 했으며, 연극, 음악, 미술, 문학, 무용 등으로 뚜렷이 구분된 예술 매체간의 인습적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이한 매체를 결합시킨 ‘인터미디어’, 즉 음악과 시각예술, 무대예술과 시를 융합한 통합 양식개념을 발전 시킨 것이다. 즉, 플럭서스 이벤트에는 대개 음향효과와 전위음악이 인체의 동작과 다양한 ‘비예술적’ 재료들과 함께 결합되어, 음악과 무대예술과 같은 시간예술의 특성이 도입됨으로써 예술작품은 더이상 물적 대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는 동적인 과정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기존미술에 있어서의 정적인 작품 개념을 뒤엎은 것이다.

예술작품을 과정으로서 규정하는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 전반에 공통된 것이기도 하지만 플럭서스의 경우에는 특히 시간성이 강조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 변화하고, 소멸하는 불확정성의 미학 또는 소멸의 미학이 그 특색이라 하겠다. 이러한 플럭서스의 소멸의 미학이 예술 오브제의 생산과는 무관한 듯 보이는 것은 사실이며, 작품의 아이디어나, 공연과정을 기록한 영상, 문서 등의 물적자료는 작품의 증거물은 될지언정 과거 예술작품과 같은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없음도 사실이다. 플럭서스 미술작품은 기상천외하며 부조리한 것 같지만 고정관념을 타파하려는 그 밑에 깔린 태도는 후대의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아트의 등장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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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 -베를린, 1964-1976 / Rene Block

플럭서스/ Rene Block

플럭서스 -베를린, 1964-1976

플럭서스「Fluxes」 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거나, 그것에 대해 평가를 내리려 시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리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어려움을 접어두더라도, 필자가 베를린에서 관계했던 플럭서스 및 그와 관련된 경향「플럭시즘 Fluxism」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리 말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베를린이라는 지역의 특수성과, 플럭서스가 이후 세대의 화가, 영화제작자, 작곡가, 연출가 들에게 미친 영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것이 진지하게 취급되지 않고 무시되는 풍토와 관련이 있다. 이 점은 플럭서스가 미래파나 다다이즘 또는 초현실주의와 같이,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하나의 심리 상태이며,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조직적 화가집단이라기보다는 예술시장과는 거리가 먼 예술가 개개인과 아웃사이더들이 모인 지극히 자유로운 집단이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해낸 행위와 창조성의 형식들은 오늘날 당연히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음은 물론이다.
플럭서스가 일반대중을 혼란 속에 몰아넣고 관객들을 분노케 했다면, 그것은 관객을 예술 창작 과정 속에 직접 참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한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의 선언이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개는 예술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의 눈과 마음속에만 존재하게 마련인 퍼포먼스나 기록된 개념으로서의 예술작품은 관객 쪽에 창조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토마스 슈미트 Tomas Schmit는 이렇게 말한다. “플럭서스로부터 배운 교훈은, 조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건축으로 만들 필요가 없고, 회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조각으로 만들 필요가 없으며, 드로잉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은 회화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기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드로잉으로 그릴 필요가 없으며, 머리 속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구태여 기록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이다! 플럭서스에 작고 단순하고 짧은 작품들이 많았던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플럭서스가 베를린에 확산된 것은 1964년에 이르러서인데, 그때는 이미 서유럽에서 있었던 초기의 플럭서스 페스티벌들이 끝난 다음이었다. 그것은 베를린 장벽 -바로 그때 보이스가 ‘비례를 완벽히 하기 위해서’ 3센티미터 높여야 된다고 주장했던- 의 갈라진 틈 사이로 스며들어왔다. 당시 서 베를린의 문화적 상황은 겉으로는 개방적인 듯 보였지만, 실상은 상상력 빈곤에 빠져 ’20년대의 황금기’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전주의적 취향의 문화를 지원하며 아카데믹한 지방적 예술을 답습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럭서스의 출현은 실로 시기 적절한 것이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대부분은 뉴욕의 소호 지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1963년에 조지 매키어너스 George Maciunas가 플럭서스의 본부를 창설했고, 딕 히긴즈 Dick Higgins는 유명한 섬씽 엘스 프레스 Something Else Press를 창설하여 1964년부터 1974년까지 중요한 플럭서스의 책들을 발간했다. 그러나 플럭서스 회고전인 「1962 비스바덴 플럭서스 1982」의 카탈로그에 실린 플럭서스의 연대기를 보면 베를린이 두번째로 자주 언급되는 도시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유럽의 주요한 플럭서스 중심지에서는 플럭서스의 페스티벌 후에 콘서트나 전시회가 따르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베를린의 경우에는 그 순서가 역으로 진행되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에 의한 단독 저녁집회들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큰 규모의 페스티벌로 발전되었고 마지막에는 매키어너스 자신이 조직한 1976년의 「플럭스 합시코드 콘서트」로 절정을 이루었다.
1964년 이래 플럭서스 FLUXUS란 이름으로 불려진 현상은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존 케이지 John Cage, 라 몬테 영 La Monte Young, 잭슨 맥로우 Jackson MacLow, 조지 브레히트 George Brecht, 매키어너스, 로버트 왓츠 Robert Watts, 히긴즈, 앨리슨 노울즈 Alison Knoules, 테리 라일리 Terry Riley 등이 활동했고, 프랑스에서는 로베르 필리우 Robert Filliou, 에메트 월리엄즈 Emmett Williams, 다니 엘 스푀리 Daniel Spoerri, 벤 보티에 Ben Vautier,장 자끄 르벨 Jean-Jacques Lebel 등이 중심이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는 빌렘 데 리데Willem de Ridder, 쾨프케 Arther「Addi」Koepcke, 헤닝 크리스찬센 Henning Christiansen, 에릭 안데르센 Eric Andersen등이 활동했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밀란 크니쟉 Milan Knizak이 중심이었으며, 독일의 쾰른-뒤셀도르프 지역에서는 백남준, 보이스, 볼프 보스텔 Wolf Vostell, 슈미트, 벤자민 패터슨 Benjamin Patterson 등이 활동했다. 일본에서는 다께히사 고스지 Takehisa Kosugi, 아이 오 Ay-0, 오노 요꼬 Ono Yoko, 시오미 시에꼬 Shiomi Shieko, 사이또 다까꼬 Saito Takako 등이 있었다. 초기의 집회장소는 뉴욕의 경우 「사회 연구를 위한 새로운 학교」에서 있었던 케이지의 강의였고, 독일 라인지방의 경우에는 쾰른에 있는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Mary Bauermeister의 스튜디오에서 열렸던 스톡하우젠 Stockhausen의 퍼포먼스들이었다.
돌이켜볼 때, 각기 다른 대륙과 도시에 사는 예술가들 사이에 정보망이 그렇게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새로운 소식은 그들 사이의 몇몇 여행가들에 의해 전파되었다-케이지는 다름슈타트를 방문하여 새로운 음악에 대해서 여름 특강을 했고, 디터 로트 Dieter Roth는 미국과 유럽을 전전했으며, 보스텔은 파리와 쾰른을 왕래했고, 월리엄즈는 파리와 다름슈타트를 오가며 활동했다. 서로간에 주소가 교환되었고, 이제껏 만난 적이 없었던 예술가들 사이에 편지에 의한 교신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우편은 개념을 전세계적으로 교환하기 위한 매체가 되었고, 이 전 플럭서스 단계에서 「메일 아트 mail art」와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이 태어났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개념의 미술은 뉴욕에서 맥로우와 영이 매키어너스를 위해 편집한 「앤솔로지 An Anthology」와 쾰른에서 보스텔이 만든 「데꼴라쥬 de-coll/age」잡지들을 통해 처음 출판되었다.
그러나, 플럭서스의 첫 출현 이후 25년이 지난 1987년 현재에 이르러서도 “플럭서스란 무엇인가?” “플럭서스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플럭서스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존 케이지를 중심으로 조지 매키어너스가 이끄는 그룹으로부터 탄생한 플럭서스는 1962년 무렵부터 1966년 사이에 스캔들을 불러일으키곤 했던 일련의 콘서트를 통해서 절정기에 이르게 된다. 플럭서스가 일종의 그룹이라는 개념은 이 시기가 남긴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콘서트들은 대개가 같은 예술가들에 의해 공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키어너스에 의한 출판활동과 조직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플럭서스가 하나의 그룹으로서 존재한 적은 결코 없다. 아마도 그 이유는 매키어너스 자신이 익명적이고 집단적인 「예술」제작 –오락성(개그)과 유용성(디자인)을 동시에 지닌- 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서명과 제작 일자가 씌어 있지 않은 1960년대의 플럭서스 작품 복제판은 다량으로 복제되어 상자나 케이스 속에 들어 있는데, 이것들은 기성제도와 예술시장에 대한 플럭서스의 위와 같은 반항적 태도의 산물이다.
플럭서스(Fluxus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란 명칭은 1960년 무렵 전통적인 예술 형식과 스타일을 벗어난 예술가들의 생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계획되었던 잡지의 제목으로서 매키어너스가 선택한 것이다. 그 잡지는 발행되지 못했지만, 플럭서스란 명칭은 1962년 매키어너스가 비스바덴(이곳에서 그는 미군에 소속된 디자이너로 잠시 일하고 있었다)에서 조직한 최초의 콘서트 시리즈인 「새로운 음악 Neueste Music」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미술사가들은 플럭서스를 이해하는 데 아직도 혼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플럭서스는 일정한 범주로 제한되거나, 목록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플럭서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적어도 무언가 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나는 내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플럭서스를 본다”라고 로버트 왓츠는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플럭서스에는 목적이나 방법에 있어서의 일치점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결코 없었다. 다만 무언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공통점을 지닌 개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하고 공연하기 위해 힘을 합쳤던 것이다. 아마도 그 공통점이란 예술의 영토는 관습적으로 생각되어 왔던 것보다 훨씬 넓다든지, 예술과 몇몇 낡은 기존 범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또한 맥로우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플럭서스 콘서트와 페스티벌들에서 작품을 공연한 우리들 가운데 매키어너스의 반예술적이고 ‘리얼리스틱한’ 이념에 동의한 사람은 비교적 드물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리니치 빌리지 12번가에 위치한 「사회연구를 위한 새로운 학교」에서 존 케이지가 가르쳤던 실험 음악 강의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의 강의는 1958년 무렵부터 1960년 5월까지 계속되었다. (다음 해에 그 강의는 리차드 맥스필드 Richard Maxfield가 맡아 그의 집에서 전자 음악 코스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라 몬테는 대학원 과정의 일부로서 이 코스를 수강하러 뉴욕에 왔다.)
정식 수강생 외에도 케이지는 개인적으로 아는 예술가들을 강의에 초대했는데, 예를 들어, 이치야나기와 내가 참여했고, 자신이 흥미를 가진 작업을 하고 있던 조지 브레히트 등도 서신 교환을 통해 참여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이 강의에는 작곡가이자 사진가인 로버트 코스모스 새비지 Robert Cosmos Savage, 해프닝 예술가 알 한센 Al Hansen과 알란 카프로우 Allan Kaprow, 시인 작곡가 극작가인 딕 히긴즈, 맥스필드 등이 참여했다. 주로 케이지를 통해서 우리가 공유하게 된 주요한 개념들은 선불교(仙佛敎), 역경(易經), 에릭 사티, 마르셀 뒤샹 등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매키어너스는 플럭서스를 하나의 운동으로 정착시키고자 했고 확고부동한 목표를 가지고 이끌어 나가고자 했다. 플럭서스 콘서트에서 공연되거나 플럭서스 출판물로 발행된 적이 있는 우리들의 모든 작품에 대해 그는 오랫동안 플럭서스의 이름으로 권리를 주장했다. 그는 그런 작품들을 「플럭서스 작품」으로 지정하여 그 리스트를 작성하고, 그 리스트에 올라 있는 작품들을 일정 수 이상 포함하는 프로그램은 「플럭서스 콘서트」라고 불려야 한 다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러한 명령에 구애를 받진 않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짜증스럽게 했다.

같은 카탈로그에 기고한 글에서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플럭서스는 뉴욕의 퍼포먼스와 라 몬테 영과 조지 브레히트 같은 예술가들의 개념적인 활동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매키어너스가 비스바덴으로 옳긴 이후 플럭서스는 스스로를 당시 미술계의 주류 속에서 안주하고 있던 표현주의나 추상 계열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위한 무한한 가능성의 저장고로 여겼다. (비스바덴 페스티벌의 프로그램과 최초의 발행물 광고에서 분명히 나타났듯이) 그러나 곧 그것은 특정한 집단과 특정한 활동을 뜻하는 것으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매키어너스가 뉴욕으로 돌아온 후에는 곧 이것저것이 뒤섞인 불협화음으로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플럭서스에 관해서 그리도 산만한 개념들이 많다는 사실이나, 사람마다(플럭서스에 실제 참여했던 사람들까지도) 플럭서스에서 저마다 다른 무엇을 찾아내고, 오늘날에는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플럭서스를 들먹이며 플럭서스와의 연관을 주장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위와 같은 발언들(히긴즈와 월리엄즈의 비슷한 발언을 포함해서)에서 공통적인 점은 매키어너스가 원했듯이 플럭서스를 명확히 규정된 사회적, 또는 반(反)예술 관습적 목표로 한정시키는데 찬성하지 않고, 플럭서스의 작곡, 이벤트에 대한 지시와 같이 열려진 해석을 인정하려는 것이다. “나의 이벤트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는 나의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작은 깨우침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1959-1960년에 제작된 백 개의 이벤트-작은 카드로 인쇄되어 상자 속에 넣어 발행된 「워터 얌 Water Yam」「1966, FLUXUS판」-에 대해서 조지 브레히트가 한 말이다. 쾨프케 역시 1958-1964년에 제작된 123개의 작품들-1972년에야 「계속하다 Continue」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에 대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로 플럭서스는 친구들이 친구들을 위해서 만든 무엇이었다. 1968년 베른과 뒤셀도르프에서 열렸던 전시회의 이름이「친구들Freunde, Friends」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전시에는 로트, 스푀리, 앙드레 톰킨스 Andre Thomkins, 윌리엄즈, 필리우 등이 참가했다. 콘서트를 보러 온 얼마 안 되는 관객들도 대부분이 친구거나 동조자들이었다. 슈미트는 이렇게 말한다.

6개월 동안에 루드비히 고제비츠Ludwig Gosewitz, 아더 쾨프케, 에메트 윌리엄즈, 벤 패터슨, 조지 매키어너스, 앨리슨 노울즈, 딕 히긴즈를 알게 되고(이것은 순전히 그 직전에 우연히 백남준을 만난 덕분이다), 다음에는 조지 브레히트를 알게 됐다는 것-바로 그것이 진짜 페스티벌이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의 기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매키어너스의 지칠 줄 모르는 추진 활동을 제외하고) 당시의 그 모든 퍼포먼스 등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달리 어디서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인가. 돈 한 푼 벌 수 없었고, 명성을 얻을 수도 없었으며, 미술계는 우리를 무시했다. (단지 장 피에르 빌헬름 Jean Pierre Wilhelm과 롤프 예를링 Rolf Jahrling 만은 특별한 예외였다.) 신문들은 다리가 다섯 달린 송아지나 왕자의 결혼식 따위가 실린 잡록 페이지에 엉터리 기사를 두어 줄 싣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목표에의 헌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던가. 매키어너스의 경우에는 확실히 그러한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전투적인 타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싸움이 벌어졌다. 후일 당국에 대항한 싸움이 벌어졌고, 플럭서스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싸움이 벌어졌다. 베를린에 있던 우리들은 보스텔과 보이스 사이에 벌어진 결말이 나지 않는 끝없는 싸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었다. 이 싸움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겠다. 베를린의 플럭서스는 다른 도시에 비해서 훨씬 더 보이스의 역할이 중대했다. 그의 이벤트는 베를린의 예술계에 혁신적 국면을 열었다.
1964년 10월 27일에 열린 베를린에서의 최초의 집회는 스탠리 브라운 Stanley Broutran 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당시 나는 우리의 활동비를 벌기 위해 밤에는 식당의 웨이터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의 화가인 회디케 K.H.Hodicke가 내 대신 역으로 그를 마중 나갔다. 그날 저녁 집회는 말하자면 브라운을 위한 환영행사였던 셈이다. 그날 저녁의 이벤트는 그의 「이쪽으로 가시오,브라운씨 This Way Brouwn」의 개념에 기초한 것이었다. 브라운의 구상에 따르면,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장소로 가는 길을 묻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달라고 부탁하면서, 시내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게 되어 있었다. 나중에 그는 그 드로잉에 서명을 하고 스탬프를 찍게 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브라운은 베를린의 어딘가에 있었는데, 그는 프로벤슈트라세의 지하실에 자리잡은 나의 최초의 화랑에 모인 관객들과 워키토키로 대화하면서 관객들의 지시에 따라 화랑으로 찾아오게 되어 있었다. 베를린 거리를 통한 가상적 드로잉을 위한 매체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화랑에 도착했을 때-한 베를린 비평가가 말했듯이 ‘엉뚱한 곳을 헤매게 만든 보상으로 교회를 여러 군데 순회시킨’ 후-이벤트가 시작될 무렵 화랑을 꽉 채웠던 많은 관중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을 뿐더러 화랑은 폐허가 되어있었다. 해프닝을 기대하고 있었던 관중들은 자신들이 속았다고 생각하고는 화랑을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최초로 플럭서스라는 명칭이 붙여진 1964년 12월 1일의 두 번째 집회에 이들 관객은 나타나지 않았다. 보이스는 뉴욕의 로버트 모리스 Robert Morris와 동시에 여덟 시간 동안 플럭서스 노래를 공연하기로 계획했다. 보스텔은 베를린 일간지 『데어 타게슈피겔』에 “나는 전달자다, 나는 전언한다!”라는 제목 아래 이 이벤트를 소개했다.

르네 블록 화랑에서 열린 두번째 저녁 집회에는 요셉 보이스에 의한 상황, 또는 환경, 또는 공간(그 명칭은 무엇이라도 좋다)이 공연되었다. 그것은 마치 메아리처럼(메아리도 일종의 창조 원칙이다) 뉴욕에서 로버트 모리스가 공연한 것과 동시에 진행되었는데, 제목은 「일급 플럭서스 노래 The Boss Fluxus Song」였다. 이 퍼포먼스는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계속되었다.
거기서 무엇을 볼 수 있었던가.

5×8미터 크기의 방 안에는 밝은 조명 아래 담요를 둘둘 만 것이 바닥에 대각선으로 놓여 있었고, 그 속에 보이스가 들어 있었다.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인 보이스는 1963년 이래 국제적 플럭서스 그룹의 일원으로 자처해 왔으며, 1962년 조지 매키어너스는 그의 플럭서스 페스티벌을 통해서 이들과 함께 새로운 음악, 새로운 개념을 위한 이 모든 국제적 노력이 돌파구를 여는데 기여한 바 있다.
담요 두루마리의 길이는 2.25미터, 너비는 46센티미터였는데, 담요의 양 끝에는 마치 보이스의 몸뚱이에서 연장된 것처럼 하나는 너비 24센티미터, 길이 64센티미터이고, 다른 하나는 너비 13센티미터, 길이 70센티미터인 두 마리의 죽은 토끼가 내밀어져 있었다. 방의 왼쪽 벽에는 바닥과 평행으로 길이 167센티미터, 두께 7센티미터의 독일 마가린으로 만든 기름덩어리가 붙어있었다.
그 위에는 바닥에서 165센티미터 되는 높이에 6×7센티미터 크기의 머리카락 뭉치가 있었고, 그 왼쪽에는 각각 너비 1.5센티미터의 손톱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이것들은 미분화된 과거의 물신(物神)일까)방의 왼쪽 구석에는 30×30센티미터 크기의 기름덩어리가 놓였고, 입구의 왼쪽과 오른쪽에도 기름덩어리들이 놓여 있었다. 오른쪽 구석에도 5×5센티미터 크기의 기름덩이가 놓여졌다. 보이스가 들고 있는 두루마리의 왼편에는 길이 178센티미터의 굵은 구리봉을 담요로 감은 또 다른 두루마리가 놓여 있었다. 방의 오른편에는 앰프가 있었다. 방안의 환경을 구성한 사실들에 대한 설명은 이쯤에서 끝내겠다.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가.

담요 속에서 보이스는 마이크를 통해 불규칙한 간격으로 음향 메시지를 보냈고, 그 소리는 앰프로 크게 확성되었다. 우리는 그가 숨쉬고 한숨을 쉬고 목청을 가다듬고 기침하고 불평하고 쉿하는 소리를 내고 휘파람을 부는 것을 들었다-그것은 마치 소리로 구현된 어휘의 목록과도 같았다. 보이스에 따르면 그 소리들은 ‘두 마리의 죽은 토끼를 연상시킬 수 있는 원초적 소리’이다.
녹음기에서는 에릭 안데르센과 헤닝 크리스찬센이 작곡한 음악이 보이스가 내는 소리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면서 불규칙한 긴 간격을 두고 연주되고 있었다.
그 사이 관객들은 들어오고 또 나갔다. 때로는 신비로운 종교 의식에서와도 같이 경외감에 싸인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그것은 의식(儀式)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마침내 일부는 자정이 됐을 때 보이스가 담요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은 베를린 장벽을 3 센티미터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는가. 보이스 : “두 종류의 인간이 베를린 장벽에서 맞부딪치고 있는데, 그들은 서로로부터 소외되어 별개의 행동양식을 발전시켰다.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나라는 우리 밖에는 없다!” 보이스는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
같은 시간에 뉴욕에서는 로버트 모리스가 담요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을까. 그에게는 어떤 질문들이 던져졌을까.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이날의 이벤트는 보이스와 그가 지닌 동기, 그리고 조각적 형태에 대한 그의 견해와의 직접적 대면이었다. 다른 관객에게는 단지 모이기 위한 또 다른 구실에 불과했다. 이 모임은 사회적 의미를 갖는가. 보이스의 비극적 ‘플럭서스 노래’가 그들에게 진정 하나의 수수께끼를 제기했던가. 때로 거의 그렇게 보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 무감각이 되찾아 들었다.
보이스 : “나는 전달자다, 나는 전언한다.” 그것은 제례적 의식일까. 그는 과연 담요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뉴욕에서 모리스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곳의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곳과 저쪽 뉴욕의 죽은 토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죽은 토끼가 정말로 생각을 할 수 있는가. 기름덩어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기름으로 된 조각이 실제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이끌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이미지는 지속될 것인가.
이런 것이 보이스가 던진 질문과 수수께끼 가운데 일부이다. 그것을 해독하기란 대단히 애매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거꾸로 그 모호성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건, 이날 밤의 이벤트는 철학적 연극을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었다.
위와 같은 플럭서스 이벤트에 대한 최초의 묘사는 이후 베를린 언론에 실린 플럭서스 콘서트에 대한 리뷰 중 유일하게 진지하고 객관적이며, 믿을 만한 것이다. (같은 신문에 실린 보스텔 해프닝에 대한 하인츠 오프의 리뷰만은 예외이다.)
보스텔의 베를린에서의 첫 해프닝이자, 그의 통산 스물다섯 번째 해프닝이 1965년 3월 한 폐차장에서 열렸다. 「현상 Phenomena」이라는 제목의 이 해프닝은 관객을 무의미한 사건들로 구성된 사전의 상황과 맞부딪치게 했다. 이 해프닝의 참가자는 보스텔의 베를린 예술가 친구들 -브레머K.P Brehmer, 회디케, 마르쿠스 뤼페르츠 Marcus Lupertz 등- 과 당시 우연히 베를린에 있었던 비엔나의 ‘행위’예술가 헤르만 니취 Herman Nitsch 등이었다. 슈미트 는 베를린의 한 잡지에 이 이벤트를 사전에 소개하는 글을 썼다. 이것이 보스텔에 대한 그의 마지막 긍정적 논평이었다.
1965년 백남준과 무어만 Moorman의 첫 베를린 등장은 센세이셔널한 것이었다. 여섯 번째 플럭서스 모임에서 백남준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자신의 「로보트 오페라 Robot Opera」를 공연할 계획이었다. 그 해 봄에 그는 금속 부품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여자 로보트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원격 조정장치를 통해서 인사를 하고 자체내의 확성기로 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이 위험스럽게 보이는 괴물이 뒤에는 한 떼의 소란스러운 ‘오페라 광들’을 이끈 채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의 서 베를린 쪽에 위치한 붉은 군대기념비로 다가가기 시작하자, 이 지역의 경비를 맡고 있는 영국군 헌병 당국은 이 공연을 위험시하여 금지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이 공연은 곧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 곁의 쿠르퓨르슈텐담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로보트는 무어만의 첼로반주와 더불어 노래를 부르면서 군중 사이를 천천히 누비고 다녔다. 루드비히 고제비츠는 무어만을 등에 태운 채 로보트의 뒤를 쫓아서 기어 다녔다. 백남준은 약간 떨어져서 이 모든 움직임을 지휘하는 한편 자신의 「대중예술을 죽여라 Kill Pop Art」라는 선언문을 군중들에게 배포했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이 들어있었다.

아리아가 있는 오페라는 시시하다
아리아가 없는 오페라는 지루하다
카라얀은 너무 바쁘다
칼라스는 너무 시끄럽다
선(禪)은 너무 힘에 겹다
백남준은 너무 유명하다
마약은 너무 지루하다
섹스는 너무 시시하다

그러나, 음악의 에로틱한 면을 강조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백남준이다. 그는 무어만에게서 이상적 해석자를 발견했는데, 그녀는 당시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음악 부문을 기획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플럭서스 음악을 연구하기 위해서, 나중에는 백남준이 무어만을 위해 디자인한 비디오 오브제 – 「TV-첼로」 「TV-브라」 「TV-침대」등-를 공연하기 위해서 수년간 함께 세계를 여행했다.
그러나 1965년 5월 15일 저녁 모임에는 스캔들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화랑에서는 TV뉴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무어만이 「톨레도의 백조 (생상스에 따른)」에 의한 백남준의 변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주 도중 그녀는 옷을 벗어 버리고 물통 속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 젖은 다리 사이에 첼로를 끼고 연주를 계속했다. 이 베를린 공연에서는 경찰이 공연을 중지시키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몇 달 후 뉴욕에서 있은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Opera Sextronique」의 공연 도중에는 백남준과 무어만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내 화랑이 문을 연 이 첫 해에 베를린에 온 모든 예술가들 -브라운, 보이스, 백남준, 보스텔-은 보다 상업화된 다른 서독 도시들과는 뚜렷이 다른 이 분단된 도시의 분위기에 곧 복종했다. 베를린의 스물네 시간의 리듬에 힘입어 비관습적인 열렬한 예술가들은 어윈 피스케이터의 옛 메트로폴 극장 옆에 있는 놀렌도르프 광장의 파이퍼즈 스낵 바에서 밤새도록 토론을 벌이곤 했다. 슈미트가 프로벤슈트라세 화랑 공연 얼마 후에 쾰른에서 베를린으로 옮겨 온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바로 그보다 몇 주 전에 고제비츠가 다름슈타트에서 옮겨 왔고, 비엔나에서 아르트만 H.C. Artmann과 게르하르트 륌 Gerhard Ruhm이, 곧 이어서 오스발트 비너 Oswald Wiener가 옮겨 왔다. 아르트만과 륌, 비너는 비엔나 그룹의 멤버인 작가들로서, 그들의 도발적인 글과 활동 때문에 고향인 오스트리아에서 그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로 낙인 찍혀 있었다. 그들은 비엔나의 행위예술가인 오토 뮐 Otto Muhl, 니취 Nitsch, 귄터 브루스 Gunter Brus 등과 공동작업을 했으며, 특히 귄터 브루스는 오스트리아의 대중에게 깊은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당국을 모독했다. 그는 베를린으로 피신함으로써 간신히 체포를 모면했고, 베를린의 친구들이 그의 본국 송환을 막아 주었다.
브라운의 첫 이벤트 이후 일 년도 채 못 가서 베를린에는 인터미디어「intermedia :음악, 회화, 연극 등을 복합한 예술」 작업을 하는 플럭서스, 또는 플럭서스와 연관된 경향을 가진 일단의 예술가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대부분 놀렌도르프 광장 근처에 살고 있었다. (1972년에는 보스텔이 쾰른에서 옮겨 왔다) 이 시기에 슈미트와 고제비츠, 륌은 밀접한 연대를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슈미트와 고제비츠는 많은 공동 프로젝트를 실천하여 그것을 스스로 발행인이 되어 출판했다. 「일일 출판 One-day Publishing」이란 제목의 이벤트(1965년)에서 그들은 출판의 전 과정을 24시간으로 축약시키고자 했다. “작가들에게 작품을 청탁하고, 그것을 책으로 인쇄하고, 배포하고, 대금을 걷는다. ” 다음과 같은 내용이 한밤중에 아홉 명의 작가들에게 해외전보로 통지되었다. “11월 28일: 일일 출판: 오후 3시까지 전보나 전화로 발표할 수 있는 기고문을 해외전보로 보낼 것. 발간은 오후 3시에서 오후 12시 사이. 고제비츠 슈미트, 베를린” 그리고 사십 명의 고객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전보가 보내졌다. “11월 28일: 일일 출판: 안데르센, 브레히트, 브라운, 필리우, 고제비츠, 쾨프케, 페이지 Page, 륌, 슈미트, 보티에, 윌리엄즈의 작품. 주문 대금은 작품 당 25마르크의 전신환으로 오후 4시까지만 받음. 배달은 오후 12시까지. 추천 바람, 고제비츠 슈미트, 베를린” 당시에 공연됐던 작품들 가운데는 「뷔딩 오라토리움 Buding Oratorium」(륌과 합작), 「세 개의 합창단을 위한 삼부 대화」, 「메모지 denkzettel」,「일일 여행 One-day Tour」 등이 있다. 「일일 여행」은 여섯 사람에게 자신들의 방문을 전보로 통지하는데, 그 내용은 ‘고제비츠와 슈미트와의 아침식사. 11시 도착’으로부터 시작하여 ‘고제비츠와 슈미트와의 저녁식사. 7시 도착’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팔에서 팔까지 Von Phall zu Phall」라는 제목의 책이 발간됐고, 「5분간 Five Minutes」(역시 륌과의 합작)이란 ‘행위’가 공연되었다. 슈미트는 이 이벤트에서 자신이 한 것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나는 육십 가지의 다른 ‘행위들’을 한데 모았다. 각 행위는 1초 만에 수행될 수 있는 것이었고, 각각 다섯 번씩 반복되도록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메트로놈을 따라서 이 60초간의 ‘행위들’의 사이클을 다섯 번 되풀이했다. 나는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쉽게 집을 수 있도록 육십 개의 구획으로 정리해 놓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행위’예술가로서의 내 경력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미리 약간의 연습을 했다. 왜냐하면 과거의 나의 행위들은 항상 느린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육십 가지 행위들 가운데 예를 들면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 꽃병에 꽃을 꽂는다. (곁에 있는 다섯 송이의 꽃으로부터 시작해서」 ‘곧’ 이라고 쓰인 카드를 보이고, 1초 후에는 ‘지금’이라고 쓰인 카드를 보인다. 또 1초 후에는 ‘방금’ 이라고 쓰인 카드를 보여준다. 소용돌이 모양의 장식을 그린다. 손톱을 입에 물었다가 얼마 후 다시 뺀다. 달력을 찢어낸다. 망치로 탁자를 친다. 메트로놈을 정지시키고 1초 후에 다시 작동시킨다. 세워진 나사못을 쓰러뜨린다. 탁구 공을 던진다……등등 – 육십 가지 다른 일들.
이와 같은 슈미트, 고제비츠, 륌의 공동작품들은 이미 음악 페스티벌이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었다. 음악 페스티벌을 통해서 우리는 플럭서스가 정확히 뜻하는 것, 또는 뜻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진작부터 있어온 혼란을 일소하기를 원했다. 보스텔의 해프닝(1965년 11월 그의 두 번째 「백 개의 이벤트-백 분」은 실내악 스타일로 공연되었는데 오직 몇 명의 참가자와 우연한 관객, 그리고 텔레비전만을 위한 것이었다)과 플럭서스란 명칭을 독점하려 는 보이스의 기도, 그리고 혼돈스럽게 표현적인 백남준과 무어만의 해석 이후, 이제 개념적이고 고전적인 작품들을 단순, 명료한 해석으로 보여줄 시기가 온 것이다. 이 1966년의 페스티벌을 위한 포스터 크기로 인쇄된 프로그램에는 공연될 모든 작품의 리스트가 연대순으로, 그리고 완벽한 오리지널 판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첫 프로그램은 영의 1960년 작인 「헨리 플린트를 위한 566」이었는데, 이 작품은 566개의 피아노 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같은 크기로 연주되는 것이었다.(고제비츠의 연주로 약 한 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에는 「드립 뮤직 Drip Music」과 「현악사중주」를 비롯한 브레히트의 이벤트, 「아드리아노 올리베티를 추모함」을 비롯한 매키어너스의 작품들, 그리고 맥로우와 로빈 페이지 Robin Page의 「기타 소품 Guitar Piece」이 공연되었다. 「기타 소품」에서 그는 잠깐 기타를 연주하고는 기타를 바닥에 떨어뜨린 후 발로 차서 무대 아래로 차내고, 계속해서 극장 밖의 거리로 나가 근처에 있는 쿠르퓨르슈텐담까지 기타를 차낸 다음, 앞의 과정을 되짚어서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다음에는 패터슨의 주전자 소품「레몬 칠중주 Septet from Lemons」, 청중이 참여하는 라일리의 「귀 소품Ear Piece」, 그리고 로트, 월리엄즈, 슈미트, 고제비츠, 히긴즈의 작품들이 공연되었다. 이 페스티벌은 1966년 4월 중에 3일 동안 계속됐다.
그해 10월에 히긴즈와 노울즈가 베를린에 도착했다. 보스텔과 브레머의 협력 하에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포함한 플럭서스의 고전적 작품들을 공연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후안 히달고 Juan Hidalgo와 토마스 마르코 Tomas Marco의 ‘ZAJ ‘콘서트가 열렸다. 2주일 후 프로벤슈트라세 화랑에서는 보이스에 의해 마지막 이벤트가 열렸다. 이것은 아홉번째 모임으로서 그 제목은 「유라시아-시베리안 심포니 1963, 서른두 번째 플럭서스 동작」이었다. 코펜하겐에서 있었던 그 서른네 번째 동작의 공연을 보고 트로엘즈 안데르센 Troels Anderson은 이 플럭서스 심포니에 대한 인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보이스는, 네 다리와 두 귀에 길고 가느다란 검은 나무 막대기를 붙들어 맨 죽은 토끼를, 바닥에 그어진 선을 따라 교묘히 조종했다. 그가 토끼를 자기 어깨에 올려 놓았을 때 막대기들은 바닥에 닿았다. 그는 벽에서부터 흑판 앞으로 가서 그곳에 토끼를 내려놓았다. 되돌아오는 길에는 세 가지 일이 일어났다. 보이스는 토끼의 다리 사이에 흰 가루를 뿌리고, 토끼의 입 속에 체온계를 꽂고, 튜브로 입김을 불어넣고, 그런 다음 둘로 갈라진 십자가가 있는 흑판 쪽으로 돌아서서 토끼의 귀를 곧추 세우는 동시에, 철판을 댄 자신의 발을 역시 철판이 놓인 바닥 위로 번쩍 쳐들었다. 그리고는 가끔씩 철판을 발로 힘껏 굴렀다.
이상이 이 이벤트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여기에 나타난 상징들의 의미는 자명하며 완전한 설명이 가능하다. 즉, 둘로 갈라진 십자가 :동서 분열, 로마와 비잔틴의 분열. 반 십자가 :재결합된 유럽과 아시아. 이것이 토끼가 도달하려는 목적지이다. 바닥에 놓인 철판은 하나의 은유이다-바닥은 얼어붙어 있고 목표를 향한 진보는 어렵다. 돌아오는 도중의 세 가지 사건은 각각 눈과 추위와 바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든 상징의 의미는 ‘시베리아’라는 핵심적 단어에 의해서 풀리게 된다.
토끼의 다리-가느다란 검은 막대기들-는 공간의 의미를 제시한다. 주어진 실제적 질료로서의 공간에 대한 관계와 경험을 가능케 하는 정신적 요소를 지칭하기 위해서 보이스는 ‘반공간(反空間)’과 ‘반시간(反時間)’이라는 말을 쓴다. 토끼의 발이 흔들리면서 그 끝에 달린 긴 막대기들이 뒤틀릴 때마다-이 불안스런 원정 도중 내내 그랬다-보이스는 그것들을 제 자리에 되돌아오게 하는 데 몹시 애를 먹었고, 잠시 동안 우리의 공간에 대한 관계는 무너졌으며,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가 깨어졌다. 보이스의 얼굴이 땀으로 뒤범벅되고,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 것은 아주 적절했다. 게다가 그는 한 발로 서서 끊임없이 평형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코 그 퍼포먼스의 강렬함은 말로는 묘사될 수가 없다. (위 글의 필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후 1969년 2월에 보이스의 다음 번 베를린 공연이 있기 전까지는 단 하나의 플럭서스 콘서트-고스지의 「확장된 음악Expanded Music」만이 열렸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음악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놀라운 집중력과 감수성으로 공연된 소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직도 나는 공중에 매달린 기타의 현이 흔들리는 막대에 부드럽게 스쳤을 때 나던 소리와 무대를 가린 거대한 종이 장막을 자르는 가위질 소리, 또는 아코디온이 바람을 넣었다 빼는 소리만을 반주로 한 부드러운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 1968년 베를린에서도 학생 데모와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절정에 달하고 있었고, 따라서 우리는 플럭서스 콘서트를 기획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보이스는 이미 1967년에 뒤셀도르프에 ‘독일 학생당’을 창설했고, 곧이어 ‘국민투표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조직 사무국’과 ‘창조성과 분야간 협동 연구를 위한 국제 자유대학「FIU」’이 창설되었다. 우리는 베를린에서 이들 기구를 위한 지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보이스와 크리스찬센의 플럭서스 콘서트가 있기로 된 1969년 2월 27일은 때마침 리차드 닉슨 미대통령이 서 베를린을 방문하기로 결정한 날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전체주의 국가를 방불케 하는 삼엄한 보안 조치가 취해졌다. 학생 데모는 미리 진압되었고, 닉슨은 대부분 닉슨을 지지하는 베를린 시민들로부터 완벽히 격리되었다.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뜻밖에도 그 긴장은 필하모닉 홀의 축제에서가 아니라, 예술 아카데미에서 폭발했다. 그날 저녁 예술 아카데미의 강당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인파로 차 있었다. 「내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그날 저녁 콘서트의 제목에 대해서 오해가 일어난 것 같았다. 왜냐하면 공연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야유꾼들이 무대를 점거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야유 때문에 보이스와 크리스찬센의 소리는 곧 들리지 않게 되었다. 몇몇 잘 알려진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시위자들은 무대 위에 소화기로 물과 거품 세례를 퍼부었고, 영사막과 무대 커튼을 찢고, 두 대의 피아노와 마이크들을 부숴 버렸다. 친구들이 임시로 무대를 치운 후-고열에 시달리고 있던 크리스찬센은 그 소동 속에서도 내내 절인 양배추로 뒤덮인 악석에서 「소금에 절인 양배추 악보」를 녹색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었다-아직 남아 있던 몇몇 사람들과 철야토론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서 보이스는 긍정적, 또는 퇴보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플럭서스에 대해서는 혁명적 대의를 위해 아무것도 기여함이 없이, 지배계급에 이용되는 억압의 또 다른 도구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가해졌다.
후에 깨달은 대로, 이들 학생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콘서트가 아니라, 조언과 도움을 보이스에게서 바랐던 것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정치적 목적과 내용이 있는 해프닝이었다. 오해의 결과로 무산된 이 콘서트는 한 달 후 묀헨글라드바크 미술관에서 재공연됐다. 재공연에서는 제목을 「또는 우리는 그것을 변화시켜야 하는가.」로 바꿨으며, 이번에는 아무런 방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베를린 콘서트와 관련해서, 그 다음날 시작된 「봉쇄 69」 환경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이 콘서트 도중 보이스는 그랜드 피아노를 예술품으로 변화시킬 계획이었지만, 누군가 피아노 위에 콘서트 반대 선언을 써 붙이고 갈색 페인트로 구호를 적어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우리는 화랑을 텅 빈 채로 두기로 결정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프닝에 왔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예술은 어디로 갔는가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기색이었다. 나중에 내가 그 피아노를 녹색 바이올린의 잔해와, 피아노 뚜껑에 못 박힌 보이스의 모자와 함께 지금과 같은 다리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보이스는 이 오브제를 사진을 통해서만 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개념에 대한 충실성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플럭서스 예술에는 흔한 일이었다.
이후 보이스는 베를린의 한 이벤트-그의 마지막 베를린 이벤트가 된-에서 직접적인 정치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 자신에게는 이 이벤트가 주목을 끌지 못했다. 1972년 5월 1일 보이스는 아프리카 학생과 아시아 학생의 도움을 받아서 베를린의 칼 마르크스 광장에서의 메이데이 시위 후 잠겨진 쓰레기를 붉은 색 비로 쓸어냈다. 그는 이 날만이라도 그 광장이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짧고 단순한 이벤트는 보이스에게는 보기 드문 직접적 발언이었다.
플럭서스 콘서트와 이벤트의 시기는 1960년대로 끝난 듯했지만, 그것은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은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음악적/시각적 장에서부터 보다 순수한 시각적 작업으로 관심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화실로 개조한 아파트에서(베를린에서는 화실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오브제나 드로잉, 회화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몇몇 수집가들이 플럭서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그들은 베를린이 아닌 외부의 수집가들이었다) 미술 단체들과 작은 미술관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전시 활동이 활발해졌다. 베를린에서 훈데르트마르크 출판사Edition Hundertmark 가 창립됨으로써 이 시기는 절정을 맞게 된다. 이 헌신적 출판사(1975년에 쾰른으로 옮김)의 창립 10주년을 맞아 DAAD 화랑은 회고전을 헌정했다. 회고전 카탈로그에서 아르민 훈데르트마르크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1970년초 나는 단지 미술품을 수집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기로 했다. 나의 아이디어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들을 설득해, 작은 오리지널 작품들의 복제판을 만들기 위해 작품을 맡기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복제본을 위해서 직접 자신의 작품을 복제하거나, 아니면 나에게 모델을 보내 복사를 의뢰할 수도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오브제나 꼴라쥬, 사진, 드로잉 따위를 작은 상자 속에 집어넣어 배포하는 것이었다. 먼저, 나는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 -귄터 브루스, 루드비히 고제비츠, 게르하르트 륌, 토마스 슈미트에게 부탁했다. 다음에는 요셉 보이스, 스탠리 브라운, 로베르 필리우, 켄 프리드먼, 후안 히달고, 조우 존스, 밀란 크니쟉, 오토 뮐, 헤르만 니취, 로빈 페이지, 디터 로드, 벤 보티에, 볼프 보스텔에게 청탁 편지를 썼다. 친구들은 고제비츠가 작업을 완전히 중단했다면서 나를 말렸지만, 나는 베를린에서 고제비츠를 만났다. 그는 빌메르스도르프의 한 다락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내게 1967년 이래 그린 드로잉과 수채화를 보여주었고, 나의 첫 번째 복제판 상자를 위해 「유조선 선장 Tanker Captain」이란 제목의 작은 드로잉을 골랐다. 약 2주일 후에 그는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고 알려 왔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만났고 그는 나에게 스물다섯 장의 복제본을 주었다.
게르하르트 륌도 내 제안에 찬성했다. 내가 귄터 브루스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집에서였다. 나는 전에 브루스가 편집한「비밀 거래 Under the Counter」란 소책자를 본 적이 있었지만 그의 주소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륌의 집에서 그를 만나 출품 의사를 물었고, 얼마 후 그를 방문했다. 그는 마르가레트 라스페와 아파트를 같이 쓰고 있었다. 그의 첫번째 「샤스트롬멜 Schastrommel」은 이미 발간되었고 그는 다음 호를 준비 중이었다. 나는 그가 최근 뮌헨에서 보여준 행위 작품 「엄밀한 시험 Acid Test」의 사진을 내 복제판 시리즈 중의 하나로 발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진으로 스물다섯 장의 프린트를 만들었고, 각 장마다 브루스가 서명을 했다.
브루스는 또 니취와 뮐의 주소를 알려 주었다. 나는 편지로 그들에게 내 계획을 설명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벤트를 찍은 사진에 서명을 해서 보내 주었다.
나는 또한 토마스 슈미트에게도 부탁했다. 그는 그때 「좋은 생각 das gute dunken」이란 책을 집필중이었고 돈이 좀 필요한 형편이었다. 그는 꼴라쥬를 만들어 주었다.
1970년 봄 나는 보이스와 필리우에게 전화로 내 제안을 설명하고 뒤셀도르프로 갔다. 나는 먼저 보이스를 찾았다. 그는 조지 매키어너스의 플럭서스 선언을 다시 손질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카탈로그의 한 페이지를 내게 주었다. 베를린으로 돌아온 나는 그것을 스물다섯 장 복사한 후 보이스에게 보냈고 그는 거기에 고무 스탬프를 찍고 서명을 했다.
당시 뒤셀도르프의 바젤슈트라스에 살고 있었던 필리우는 내게 작품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후 그는 우편엽서를 개조한 작품을 보내왔다. 다음에 나는 쾰른으로 보스텔을 만나러 갔다. 그는 관심을 보였으나, 그가 원하는 특정 예술가가 포함되지 않는 한 복제판 시리즈에 출품할 수 없다는 거절의 편지를 보내왔다.
밀란 크니쟉의 작품은 전에도 여러 점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모델과 스물다섯 개의 서명을 보내 주었다. 나는 그가 보내 준 모델에 따라 만든 오브제에 그의 서명을 붙였다. 그의 작품은 일부가 불에 탄 남자 셔츠였다. 그래서 나는 셔츠를 모아 내 집 정원에서 불을 질렀다.
켄 프리드먼은 사진복사한 편지를 보내 주었는데, 편지 내용 중에는 구입자가 그에게 편지를 쓰면 답례로 무언가를 보내주겠다는 말도 들어 있었다.
벤 보티에에게는 여러번 편지를 보낸 끝에, 첫 발행본이 거의 완성되어 레테르까지 붙여졌을 무렵, 그의 작품이 마침내 도착했다. 그것은 스물다섯 장의 압지에 예술에 대한 진술을 적고 서명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추가로 레테르를 인쇄했다.
루드비히 고제비츠와 나는 코펜하겐으로 쾨프케를 방문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셨고, 그는 내게 작품을 제작해서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보내지 않았다.
스탠리 브라운은 복제판 시리즈에 출품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원칙이라고 알려 왔다.
작품들이 모두 입수되자, 나는 베를린의 메르케 포장회사에 스물다섯 개의 상자를 주문했다. 그리고 마리엔도르프의 작은 인쇄소에서 작가들의 이름을 인쇄한 레테르를 제작했다. 나는 상자에 레테르를 붙이고 상자 속에 작품을 집어 넣었다. 이로써 첫 번째 상자 시리즈가 완성된 것이다. 나는 도장을 사서 문자를 새겨 넣고 그것으로 첫 안내서를 찍어냈다. 그러나 주문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1960년대 말에는 과거의 전우였던 보이스에 대한 보스텔의 첫 번째 신랄한 공격이 시작됐다. 아직 베를린에 오지 않았던 보스텔은 플럭서스의 미술사적 의미는 해프닝에 의해서 여지없이 퇴색해 버렸다고 단언하면서 플럭서스를 비판하는 일련의 논쟁을 개시했다. 1968년 보이스가 ‘독일 학생당’의 명칭을 「플럭서스 서부 지역Fluxus Zone West」으로 개칭했을 때, 보스텔은 지금이야말로 누가 독일의 제1인자인가를 증명할 시기가 됐다고 결심했다.

플럭서스
플럭서스
플럭서스 ‘독일 학생당’의 개칭에 대하여
플럭서스 ‘플럭서스 서부 지역’에게
플럭서스
플럭서스
플럭서스
플럭서스
플럭서스는 조지 매키어너스가 발명한 명칭이다
플럭서스는 1962년 비스바덴에서 백남준과 보스텔의 협력하에 매키어너스에 의해 창설되었다
플럭서스 페스티벌은 1962년 비스바덴, 런던, 코펜하겐, 그리고 파리에서 열렸다
플럭서스는 독일 본부는 1962-1963년 쾰른에서 토마스 슈미트가 이끌었다
플럭서스 프랑스의 대표는 벤 보티에이다
플럭서스 동부의 대표는 프라하의 밀란 크니쟉이다
플럭서스 서부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켄 프리드먼의 플럭서스 그룹이다
플럭서스 서부는 뉴욕 중앙 본부의 서쪽에 있다
플럭서스 서부는 켄 프리드먼이다
플럭서스 동부는 밀란 크니쟉이다
플럭서스 중부는 독일이다
플럭서스 독일은 보스텔이다
플럭서스 독일의 플럭서스 도시는 쾰른이다
플럭서스와 해프닝 센터는 쾰른 실험실이다
플럭서스 문헌 센터는 뷔르템베르크에 있다
플럭서스는 스타 숭배나 신비주의적 행동과는 양립할 수 없다
플럭서스는 기독교적 용어에 근거하지 않는다
플럭서스는 절대로 십자가를 사용한 적이 없다
플럭서스 서부는 미국 서부의 켄 프리드먼이다!
플럭서스 서부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프리드먼의 행위 센터를 뜻한다.
플럭서스 서부는 언제나 서부에 있을 것이다
플럭서스 서부는 유럽에 있지 않다
플럭서스 12/10/86, 쾰른 상호작용 예술 이론 팀 뒤셀도르프 LIDL 아카데미 회원

이에 대해 베를린에서 슈미트가 반박했다. 보스텔의 선언은 처음에 그것을 읽고 머리를 가로 저을 때 생각하게 되는 것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최후의 춤은 보스텔라이다‥‥운운’) 그러나 그것이 운위하고 있는 대상이 너무나 알려지지 않고 정확히 설명된 적이 없어서 허위진술에 의해 손상을 면치 못할 경우라면, 더구나 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언급되어 있고, 또한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로 쓰여진 것이라면, 사실을 조작함으로써 개인적 이득을 볼 것이 없는 누군가가 그것을 정확히 바로 잡아야만 할 것이다.
플럭서스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의 긴밀한 도움을 받아 매키어너스가 창설했다. 스물두 명의 핵심적 참가자들로 구성된 매키어너스의 첫 번째 ‘편집위원회’ 명단이나, 스물네 명으로 된 두 번째 ‘편집위원회’ 명단 그 어디에도 보스텔의 이름은 없다.
유럽의 플럭서스 페스티벌은 1962년 비스바덴, 코펜하겐, 파리에서 열렸고, 1963년 뒤셀도르프, 암스테르담, 헤이그, 런던, 니스에서 열렸다.
독일의 플럭서스 본부란 것은 결코 있어본 적이 없다. 당시 쾰른의 내 주소는 서적이나 정보를 위한 연락장소였을 뿐이다. 리비아 석유 회사 도서관에서 온 엽서나 그 비슷한 것들 외엔 특별한 것이 배달된 적도 없고 특별한 일이 일어났던 적은 더더구나 없다.
쾰른은 성직자와 조직 범죄와 미술품 거래의 도시이지, 결코 플럭서스의 도시는 아니다.
“플럭서스는 스타 숭배나 신비주의적 행동과는 양립할 수 없다” -이거야말로 웃기는 얘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플럭서스란 무엇인가. 플럭서스를 정의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겠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주제넘은 일이므로, 다만 다음에서 진술하는 것을 일종의 각주로서 이해해 주기 바란다. 만약 1962년 이래로 매키어너스의 지휘 아래 벌어졌던 모든 것을 플럭서스로 분류하고 그 자체를 플럭서스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중요한 것과 시시한 것이 뒤섞인, 산만하기 짝이 없는 집합이 되어 여하한 미학적 분류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 경우에는 스톡하우젠, 몬 Mon, 해리 크레이머 Harry Kramer 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플럭서스 시기를 1962년에서 1964년으로 제한하여 오직 7과1/2개의 유럽 페스티벌과 그 시기의 플럭서스 출판물, 그리고 매키어너스, 라 몬테 영, 조지 브레히트, 에메트 월리엄즈, 벤 패터슨, 백남준, 쾨프케, 로빈 페이지, 벤 보티에, 잭슨 맥로우, 딕 히긴즈, 오노 요꼬, 앨리슨 노울즈, 로버트 왓츠, 토마스 슈미트 등이 당시 하고 있던 작업만을 플럭서스에 포함시킨다면, 그것은 비교적 일관성있고, 매우 독특하며 명확히 묘사하기 힘든 집합이 될 것이다. 아주 막연하게나마 서술해 본다면 -개념적, 구체적, 비표현주의적이며, 비상징적이고, 일차적이며, 비형식적이다. 형식을 극도로 환원시켰다. 또한 전통적인 공연 형식들을 파괴했으며, 감각적이고, 무의미하다 등등.
표현주의적 경향이 뚜렷한 백남준이나 보이스, 또는 보티에 같은 작가들을 엄밀한 의미의 플럭서스에 귀속시키는 요소는 바로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즉각성이다. 반면에 크니쟉과 같은 표현주의자는 플럭서스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프리드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보스텔과 같이 미학적으로 아카데믹한(이 점에 관한 한 상당히 뛰어나다) 관례적 상징주의자의 경우는 플럭서스를 생각조차도 할 수 없다.
“플럭서스 타운… 플럭서스 센터… 독일 플럭서스…”심지어 보스텔 스스로 과거에 매키어너스의 가장 심각한 단점이 관료주의임을 지적하곤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플럭서스는 어떤 개인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공격을 위해서 이용될 수는 없다.

플럭서스가 외투일까. 외투라 해도 그저 입기만 하면 아무에게나 딱 들어맞는 외투는 아니다. 그러나 외투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제멋대로 뜯어고칠 수는 없는 것이다.

1960년대에 DAAD의 후원으로 케이지와 얼 브라운 Earle Brown이 베를린에 1년간 초청되었다. 이들은 베를린에 최초로 초청된 플럭서스 관련 작곡가들이었다. 브라운은 1969년에 연구기금을 받았고, 1972년 이후로 코너, 필리 우, 구보따 시게꼬, 제오프리 헨드릭스, 히긴즈, 존즈, 카프로우, 퍼 커크비 Per Kirkeby, 크니쟉, 고스지, 페이지, 백남준, 스푀리, 보티에, 요시마사 와다, 왓츠, 윌리엄즈 등이 연구기금을 받았다.
이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베를린은 뉴욕 외의 가장 중요한 지속적 플럭서스 활동지가 되었다.
그 이후 개인 화랑이나 예술협회들, 예술 아카데미, 국립 화랑 등에서 열렸던 수많은 활동, 전시, 이벤트, 콘서트 가운데서 결론 삼아 1970년의 「페스툼 플룩소룸 festum fluxorum」과 1976년의 「플럭스 합시코드 콘서트와 플럭스-미로 Flux Labyrinth with Flux Harpsichord Concert」 두 가지만 설명하겠다.
1970년 가을 보스텔의 주도로 한스 솜Hanns Sohm과 하랄드 지만 Harald Szeeman이 기획한 최초의 중요한 기록 전시인 「해프닝과 플럭서스 Happening & Fluxus」가 쾰른 예술협회에서 열렸다. 모든 해프닝과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초대되었고, 내가 아는 한 보이스와 매키어너스 만이 거절했다. 그러자 쾰른에서 모였던 예술가들 일부를 베를린으로 초청하는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떠올랐다. 그리하여 11월 14일과 15일 이틀간 「페스툼 플룩소룸」이 열렸다. 이에 앞서 11월 11일에는 카프로우가 그의 베를린에서의 첫 번째 해프닝을 가졌다 -당시 이미 그는 극적, 바로크적 이벤트로부터 보다 최근의 단순하고 개념적인 작품으로의 전환을 보여주기 위해서, 남용된 ‘해프닝’이란 용어를 버리고 ‘퍼포먼스 perfonnance’란 용어를 썼다. 그 제목은 「달콤한 장벽 A Sweet Wall」이었다. 그것은 쾰른에서 온 회디케와 히긴즈를 비롯한 몇 명의 도움으로 공연되었다. 그들은 진짜 베를린 장벽에 평행해서 작은 벽을 쌓았는데, 잼을 바른 빵 조각을 몰타르 대신 썼다. 그들은 빗 속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걸린 끝에 그 축소판 베를린 장벽을 완성한 다음, 그날 저녁 그것을 발로 차서 무너뜨렸다. 근처에는 경찰이 많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작업을 감시하러 오지 않았다. 로자 룩셈부르그가 살해된 곳에서 멀지 않은 란드베르카날에서는 잠수부들이 무기 은닉처를 수색하고 있었고, 베를린 장벽 동편의 감시탑에서는 보초들이 이를 감시하고 있었다.
안데르센, 필리우, 쾨프케, 무어만, 카롤리 슈니만, 윌리엄즈(그는 1980년 이래 베를린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등이 참여한 「페스툼 플룩소룸」의 절정은 쾨프케의 「당신이 일하는 동안의 음악 Music While You Work」이었다. 이 퍼포먼스는 수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고제비츠와 슈미트도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중앙 무대의 테이블 위에 놓인 전축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각자가 선택한 어떤 행위를 계속하도록 되어 있었다. 쾨프케는 레코드의 첫 부분 몇 바퀴만 빼놓고는 긁어 흠집을 내고 풀을 잔뜩 칠해 놓았다. 그 결과 레코드 위의 전축 바늘은 처음 육십초만 제대로 트랙 위를 돌고는 곧 건너뛰기 시작하더니 무시무시한 긁히는 소리를 내면서 전축이 꺼져 버렸다. 그들이 하던 행위를 중단 당한 공연자들은 턴테이블로 가서 먼저 도착한 사람이 음악을 다시 틀었다. 이런 과정은 공연자 중 한 사람이 예정된 임무를 다했을 때까지 반복되었다.
1976년 마침내 매키어너스가 「소호 – 맨하탄 중심가 SoHo – Downtown Manhattan」를 위한 플럭서스 미로를 만들기 위해 베를린에 왔다. 미국 건국 200주년을 맞아 열린 이 전시회는 지극히 기구한 역사를 지닌 뉴욕 소호 지구의 예술가들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최근까지 소호는 상업지역으로 소규모의 종이 및 직물 제조업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뒤떨어진 경영방식으로 인해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어 맨하탄 밖으로 옮겨가지 않을 수 없었다. 1965년 무렵에는 빈 창고와 빌딩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시 당국은 이 지역의 역사적 주철(鑄鐵) 건축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전체를 철거하는 계획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크고 임대료가 싼 이 지역의 창고들을 처음 발견한 것은 노울즈, 히긴즈, 오노, 헨리 플린트, 아이-오 등으로서, 이들은 커넬 스트리트와 웨스트 브로드웨이에 자리잡았다. 처음에는 불법적으로 거주했지만, 매키어너스에 의해 추진되고 확산된 협동 계획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창고를 살 수 있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소호의 건물들을 파괴로부터 보존할 수 있었다.
이 전시회는 소호를 대표하는 이후의 경향들 -미니멀, 개념 미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미니멀 뮤직- 외에, 플럭서스의 센터로서의 소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매키어너스는 그가 오랫동안 구상해 오던 플럭서스 미로를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위촉되었다. 그 미로는 코믹하거나, 위험스럽거나, 불안스런 상황과 장애물의 연속으로서 관객은 그것들을 통과해야만 다른 쪽 출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매키어너스는 왓츠, 백남준, 아이-오, 존즈, 래리 밀러, 헨드릭스, 와다 등을 초청해서 미로의 각 부분을 디자인하도록 했다. 또한 그 자신도 심혈을 기울여 미로의 일부를 제작했는데, 진실로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특색을 부여하는 한없이 풍부한 플럭서스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플럭서스 미로는 예상 외로 대성공을 거두고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미로의 여러 부분을 계속해서 고치고, 확장하거나, 심지어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시회가 끝난 다음까지도 훌륭히 살아남았다.
미로 제작을 위해 뉴욕에서 왓츠, 와다, 밀러, 백남준이 왔으므로, 우리는 이 기회에 유럽에 살고 있는 옛 플럭서스 그룹의 멤버들이 참여하는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프랑스의 필리우와 보티에, 베니스 근처 아쏠로에 살고 있는 존즈, 그리고 쾰른의 브레히트가 초청되었다. 이것은 14년전 비스바덴과 뒤셀도르프에서의 콘서트 이래 매키어너스가 독일에서 처음으로 기획한 콘서트였고, 또한 매키어너스가 기획하고 출연한 최후의 위대한 플럭서스 콘서트였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로서는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플럭서스 콘서트이기도 하다.
1967년 슈미트가 조직한 음악 페스티벌이 유일하게 그랬던 것처럼, 이날 저녁의 콘서트는 필요한 재료의 긴 명세서에 이르기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시계바늘같이 정확하게 진행되었다. 과거의 작품과 새로운 작품이 합시 코드로(때로는 속에서, 또는 그 위에서) 연주되었다. 우리는 작곡자 자신의 해석을 통해서 음악을 듣고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날 저녁의 콘서트는 비디오로 녹화되어 남아 있다 -그곳에서 또 한번 만물(萬物)은 유전(流轉)하고 있었다.

1977년 10월 20일, 아더 쾨프케는 코펜하겐에서 죽었다.
1978년 5월 9일, 조지 매키어너스는 보스턴에서 죽었다.
1986년 1월 23일, 요셉 보이스는 뒤셀도르프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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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

1961
매키어너스가 「플럭서스 선언」 발표「비스바덴」 1962
플럭서스 현대음악 페스티벌「비스바덴」

1963
「페스툼 플룩소룸」 「뒤셀도르프」

1964
9월 15일, 르네 블록 화랑 개관「베를린」. 개관전으로 「네오다다/팝/데콜라쥬/자본주의 리얼리즘」전 열음.
10월 27일, 르네 블록 기획으로 베를린 최초의 플럭서스 공연 시리즈 시작. 첫날 작품으로 스탠리 브라운의 「이쪽으로 가시오, 브라운 씨」가 공연됨.
12월 12일, 르네 블록의 기획으로 베를린 최초의 해프닝인 보이스의 「두목」이 공연됨.
1월-11월, 백남준의 「로보트 오페라」, 백남준과 샬로트 무어만의 「플럭서스 콘서트」, 보스텔의 「현상」, 「베를린-백 개의 이벤트-백 분-백 개의 장소」, 토마스 슈미트의 「행위」 등을 비롯한 퍼포먼스 시리즈가 르네 블록 화랑에서 공연됨. 플럭서스 예술가 루드비히 고제비츠와 토마스 슈미트가 베를린으로 이주.

1965
1월-11월, 백남준의 「로보트 오페라」, 백남준과 살로트 무어만의 「플럭서스 콘서트」, 보스텔의 「현상」,「베를린-백 개의 이벤트-백 분-백 개의 장소」,토마스 슈미트의 「행위」등을 비롯한 퍼포먼스 시리즈가 르네 블록 화랑에서 공연됨.
플럭서스 예술가 루드비히 고제비츠와 토머스 슈미트가 베를린으로 이주.

1966
10월 31일, 르네 블록의 기획으로 새로운 실험 음악 콘서트 시리즈와 보이스의 플럭서스 이벤트 「유라시아-시베리안 심포니 1963, 서른두번째 동작」이 공연됨.

1969
2월 28일-11월 11일, 아홉개의 시리즈로 이루어진 환경 작품전「봉쇄 69」가 르네 블록 화랑에서 열림. 여기에는 보이스, 팔레르모, 회디케 등이 참가. 작품의 부도덕성 혐의로 오스트리아 경찰당국의 추적을 받고 있던 비엔나 출신 행위예술가 귄터 브루스가 베를린에 정착. 이곳에서 그는 퍼포먼스를 중단하고 그래픽 작업에 전념. 이후 십 년간 귀국이 허용되지 않음.

1970
「해프닝과 플럭서스」전 (쾰른) 4월-11월, 백남준, 보스텔, 마우리찌오 카젤, 마르쿠스 라에츠 등이 참가한 음향 환경 작품 시리즈 「음향이 있는 공간」이 르네 블록 화랑에서 열림. 11월 11일, 블록의 기획으로 알란 카프로우의 「달콤한 장벽」이 열림, 11월 14일-15일, 블록의 기획으로 에릭 안데르센, 로버트 필리 우, 알 한센, 무어만, 에메트 월리엄즈 등이 참가한 「페스툼 플룩소룸」이 포럼 극장에서 열림. 아르민 훈데르트마르크가 ‘훈데르트마르크 출판사’ 설립, 보이스, 고제비츠, 슈미트 등 플럭서스 예술가들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인 브루스, 헤르만 니취, 아르눌프 라이너, 륌 등의 작품을 발행, 첫 기획으로 11인의 작품 포트폴리오를 발행.

1971
3월 5일-4월 3일, 르네 블록 화랑에서 「디자인, 악보, 프로젝트 드로잉」전 열림. 출품 작가는 보이스, 조지 브레히트, 필리우, 고제비츠, 회디케, 쾨프케, 르윗 피에로 만조니, 팔레르모, 파나 마렌코, 폴케, 리히터, 디터 로트, 슈미트, 벤 보티에, 보스텔 등. 4월 3일-5월 1일, 블록 화랑에서 마르셀 뒤상의 레디메이드 전시. 보스텔, 쾰른에서 베를린으로 이주.

1972
5월 1일, 블록의 기획으로 보이스의 「청소」가 칼 마르크스 광장에서 열림. 7월-9월, ‘신베를린 예술동맹「NBK」’의 기획으로 보스텔의 「전쟁의 참화 Desastres della Guerra」 프로젝트 중 일부인 해프닝 「베를린 의자」와 「베를린 침대차」가 공연됨. 보스텔은 보이스, 브레머, 페터 캄푸스, 회디케, 레베카 혼 등이 제작한 테이프를 모아 이 이벤트에 대한 비디오 영화를 제작.

1973
9월 9일-10월 3일,’NBK”독일 학술 교환 계획「DAAD」”베를린 페스티벌’의 주최로 「아방가르드 행위예술「ADA」7전이 예술 아카데미에서 열림. 이 전시는 필리우, 카프로우, 볼프 칼렌, 마리오 메르쯔 등의 ‘행위’ 및 환경 작품들과 보스텔의 해프닝 「베를린 열병」으로 구성됨.

1976
9월 3일, 「플럭스 합시코드 콘서트」가 블록의 기획으로 예술 아카데미에서 열림, 참가자는 브레히트, 조우 존스, 조지 매키어너스, 래리 밀러, 백남준, 보티에 등. 9월-10월, 퍼포먼스, 음악, 문학 등이 망라된 「소호 중심가 맨하탄」이 블록의 기획으로 예술 아카데미에서 열림.

1978
백남준 •보이스, 「조지 매키어너스를 기념함」전 1979
9월 15일, 르네 블록 화랑이 개관한 지 정확히 15년만에 문을 닫음. 주로 베를린에서 제작된 보이스의 작품들이 마지막 전시로 마련됐는데, 보이스는 이 전시를 위해 화랑 벽의 석고를 모두 떼어내어 스무 개의 나무상자 안에 포장했다.

1983
1월 21일-4월, 퍼포먼스, 강연, 콘서트, 전시회 등으로 이루어진 「3부로 된 플럭서스 소사」전이 DAAD 주최로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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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주로 독일의 여러 도시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국제적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는 여기 참가했던 백남준이나 보이스 등 일부 작가를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좨 생소 한 편이다. 플럭서스는 기존의 분업화된 예술 범주를 무너뜨리고, 예술과 현실 사이의 융합을 꾀하는 일종의 총체 예술개념을 표방하였다. 이 운동은 해프닝, 퍼포먼스, 이벤트, 액션 등으로 불리는 행위예술의 형태로 활발히 나타났는데, 거기에는 전위음악을 비롯하여 문학, 무대예술 등 다양한 예술매체들이 상호 결합되어 있다.
저자 르네 블록은 베를린에서 자신의 화랑을 통해 플럭서스의 활동을 지원하고 많은 플럭서스 공연을 기획한 플럭서스 운동 참여자의 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목도한 베를린에서의 플럭서스 운동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서두에서 말하고 있듯이 플럭서스가 무엇인가를 정의 내리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그것은 비단 플럭서스에 참가한 작가들의 국적이 매우 다양하다든가, 그것이 어느 일정한 곳에 본거지를 둔 운동이 아니라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난 국제적 성격을 띤 운동이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플럭서스는 특정한 방법론을 내걸고 일정한 회원으로 구성된 기존적 의미에서의 그룹과 달리 뚜렷한 원칙을 내세운 바가 없고, 플럭서스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플럭서스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플럭서스의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가는 각자의 활동지로 돌아가고, 또다시 재회하는 매우 자유로운 참여형식을 보여주기 때문에, 플럭서스에 참여한 모든 작가 개개인의 활동을 플럭서스의 범위에 넣어야 할지, 아니면 공식적으로 플럭서스라는 명칭이 붙은 활동만으로 한정해야 할 것인지도 분명치가 않다. 플럭서스 참가자의 한 사람인 조지 브레히트는 플럭서스에 대한 오해는 그것을 일정한 강령과 프로그램을 갖춘 그룹으로 보는 데 있다면서, 플럭서스는 원리도 방법론도 내세우지 않았고, 단지 기존 예술매체간의 엄격한 경계를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이를 허물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플럭서스가 지향하는 바에 대한 발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매키어너스의 「플럭서스 선언」「1961」은 미술계에서 ‘경력을 쌓은’ 예술가들에 의해 생산되어 미술유통구조 속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는 예술, 주위 환경과 절연된 채 마치 진공 속에 존재하는 듯한 정적인 예술에 대한 거부를 표명하고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당시 미술계의 주류로서 국제 양식화하여 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거부였다. 매키어너스의 선언은 이같이 기존 예술에 대한 반항으로서 플럭서스 운동의 의미를 규정하는 이외에 보다 적극적 정의도 시도하고 있다. 즉, 플럭서스는 단순한 일상적 사건이 갖는 단일구조적이고 비(非)작위적인 성질과 유희, 또는 희극적 요소를 결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플럭서스는 극적 요소가 없는 일상적 사건과 대중적 무대예술, 개그, 어린이의 유희와 뒤샹을 한데 뒤섞은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여기서 보듯이 플럭서스의 선택폭은 상당히 넓은 셈이다.
원래 플럭서스란 명칭은 미국 출신 건축가 겸 디자이너였던 매키어너스가 일찌기 구상했으나, 발간되지 못한 잡지의 이름으로 붙여진 것이었다. ‘흐름, 변천’을 뜻하는 라틴어인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리투스의 ‘만물은 창조의 흐름 속에서 유전한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1961년 매키어너스는 뉴욕의 매디슨 가에 ‘AG’화랑을 열고 전위적 음악가, 화가, 시인들이 참가한 일련의 콘서트를 열었다. 여기에는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은 리차드 맥스필드, 잭슨 맥클로우, 헨리 플린트, 딕 히긴즈 등이 참여했다. 같은 시기에 라 몬테 영은 ‘실험적’ 예술관을 공유하는 미국 및 유럽 예술가들 -존 케이지의 가르침을 받은 알 한센, 알란 카프로우, 조지 브레히트, 백남준, 밴 패터슨 등을 위시한-의 작업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그는 매키어너스의 협력을 얻어 이를 「앤솔로지 An Anthology」란 제목의 책으로 발간한다. 매키어너스는 곧 재정적 곤란 때문에 화랑 문을 닫고 뉴욕을 떠나 독일의 비스바덴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플럭서스 선언」을 발표하고 뉴욕의 동료예술가들을 초청하여 1962년 최초의 「플럭서스 축제」를 열었다. 그것은 당시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던 추상표현주의와 음악계의 주류이던 국제 양식파, 또는 시의 기존 유파에 반대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 누구나가 참여할 수 있는 개방된 집단전이었다. 「플럭서스 축제」는 비스바덴에 이어 같은 해 코펜하겐과 파리에서 잇달아 열렸고 네번째는 이듬해 2월 뒤셀도르프에서 열렸다.
플럭서스의 초기 이벤트들은 비교적 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으나 점차로 극적, 허구적 요소카 삭제 되어가면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시공간을 강조하는 매우 단순한 개인적 행위로 환원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조지 브레히트의 작품 「오르간 소곡」의 지시사항에는 단지 ‘오르간’이란 단어 하나만이 등장한다.
오르간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는 전적으로 ‘연주자’개인의 자유에 달려 있다. 「플루트 독주」라는 작품에는 ‘해체/조립’이라는 두 단어 외에는 아무런 지시사항이 없다. 따라서 ‘연주자’는 악기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그의 「현악사중주」는 ‘악수하기’라는 지극히 ‘비예술적’인 일상 행위를 지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위의 예에서도 보듯이 플럭서스의 예술가들은 예술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없애고자 했으며, 연극, 음악, 미술, 문학, 무용 등으로 뚜렷이 구분된 예술매체간의 인습적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그들에게는 인간 경험의 총체성과 결부되지 않은 표현형식이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이한 매체들을 결합시킨 ‘인터미디어’, 즉 음악과 시각예술, 무대예술과 시를 융합한 통합양식개념을 발전시켰다. 플럭서스의 초기 참가자들 중 많은 사람이 음악가 출신이었던 점에 비추어 특히 음악적 요소가 강조된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플럭서스의 이벤트에는 대개 음향효과와 전위음악이 인체의 동작과 다양한 ‘비예술적’ 재료들과 함께 결합되어 있다. 음악과 무대예술과 같은 시간예술의 특성이 도입됨으로써 예술작품은 더 이상 물적 대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는 동적인 과정으로 대체된다. 이것은 기존 미술에 있어서의 정적인 작품 개념 -예술가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물적 대상을 만들어내고 그 대상은 영구 불변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감상되고 소유되며 거래되는-을 뒤엎은 것이다. 예술작품을 과정으로서 규정하는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 전반에 공통된 것이기도 하지만, 플럭서스의 경우에는 특히 시간성이 강조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 변화하고, 소멸하는 불확정성의 미학 또는 소멸의 미학이 그 특색 이 라고 하겠다.
그러나 애초에 매키어너스가 제기한 예술의 상품화의 문제가 해결됐는가는 의문이다. 물론, 플럭서스의 소멸의 미학이 예술 오브제의 생산과는 무관한 듯 보이는 것이 사실이며, 작품의 아이디어나, 공연과정을 기록한 영상, 문서 등의 물적 자료는 작품의 증거물은 될지언정 과거 예술작품과 같은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없음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플럭서스가 미술계의 인정을 받아 ‘유명’해지자 그러한 물적(物的)자료들은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하고 수집가들의 소장목록에 오르게 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뒤상의 ‘레디 메이드’가 본래 의도와는 반대로 기존 미술유통구조 내로 흡수되는 역설적 운명을 겪은 이래로 플럭서스를 포함한 뭇 전위예술 역시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 박승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6-2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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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can see, these fees are relatively honest. The best choice may very well be to order a paper per week upfront to have a chance to deliver some modifications, if essential.

  • College Degree: 10 times – $14.00; eight times – $15.00; five times – $17.50; 3 times – $19.00; 24 hours – $23.00.

Do you have to evaluate these prices with EssayClick.web charges, you could acknowledge that they’re in essence the precise similar. Each businesses tend to carry their pricing policy steady and very affordable to current far more faculty pupils an opportunity of finding professional support.

  • University Diploma: ten times – $16.50; 8 days – $17.fifty; five times – $20.00; 3 days – $21.fifty; 24 hrs – $26.00.

Commonly, these are definitely the most typical degrees mainly because Master’s and Ph.D. operates have to have unique awareness in the topic and thorough study that makes charges greater. The cost tag per web page with all the Master’s degree can go as much as $30 and together with the Ph.D. level – as much as $40, dependent about the student’s stipulations.

Bestessays.com

  • General Overview

This can be frequently an extra veteran amid personalized composing solutions that has been about the industry for basically twenty years. You’ll get hooked the instant you visit their web site as being a consequence of its great and fashionable design. Bestessays.com understands the best way to appeal to new customers.
Firstly, they are able to take even all those assignments which can be because of in 3 hrs. How neat may be the reality that? While leaving an assignment until eventually the very last next is very irresponsible, you are going to uncover loads of various predicaments in students’ life, so possessing this opportunity is unquestionably an asset. 2nd, all potential customers who purchase a endeavor into the original time will obtain an extremely nice 15% discounted. That’s an incredible hook. Very like our first company on this listing, SuperiorPapers, Bestessays.com workforce would really like their client to simply check out out their alternatives on your originally time – and so they may be caught because of how superb their paper high-quality is.
This enterprise is definitely a exact huge: in a very one working day they manage to as many as 375 orders along with the help of about 600 experienced writers. We think this is often the ideal indicator of how flourishing they can be – constantly hectic, normally helping college or university college students.

  • Pricing

The pricing process of this firm is extremely identical in the direction of the just one particular of our to start with business. In addition they offer Typical, Premium, and Platinum High-quality. Let’s evaluation their pricing coverage:

  • Standard Good high quality: The value for each web page for any Regular Excellent writing that is certainly unquestionably obtain ten times in advance will cost you 21.ninety nine USD. Standard High-quality orders will not be the company’s prime precedence which doesn’t advise they may be poorly prepared – they are going for getting fewer advantages.
  • Premium High-quality: A web page at this volume of high quality will expense you $23.99. According to the firm’s site, this really is kind of maybe probably the most well-known final decision given that Premium Fine quality orders are prepared by only one using the best ten specialists inside a picked put.
  • Platinum Fantastic excellent: You could possibly genuinely need to spend $26.99 for each webpage, but your essay are going to be written by 1 specific within the finest writers who retains a Ph.D. degree and edited by one in the Superb Assurance authorities.

That’s acceptable, this can be surely the most high-priced enterprise from our file of corporations. Nonetheless, with them you’ll be 100% unquestionably sure you might be the centre of focus. Aside from, they struggle and make their clients’ encounter a tiny bit far superior by supplying generous savings. Customers who make order 15-50 pages prolonged will get a 5% price tag reduction; 51-100 webpages will provide you a 10% rate reduction; within the event you buy greater than 1 hundred internet pages, you low price will probable be 15%. This seems like an excellent offer, specially when you may be ready to spend a lot more than $20 per web page (and just the number of webpages should on your essay include?).

EssayDragon.com

  • General Overview

This web-site is made by a crew of students who discovered how their pals have been combating their a whole lot of assignments and needed to sacrifice their private life to complete effectively in class. They made a decision to become progressive and make the developing solution easier and also far more nice. In this article, you could have a probability to very easily converse as well as your skilled creator and make alterations all over the creating plan of action being an different to watching for a closing product and requesting a revision. This organization has the capacity to aid you in finishing a huge selection of obligations: all types of papers, assess posts or blog site posts and guide experiences, lab reviews and scenario scientific studies, abstracts and proposals, thesis and dissertations, all varieties of imaginative building assignments, and so forth. Their providers are genuinely excellent, that is why EssayDragon is one of our most popular corporations.

  • Pricing

This business gives their companies at an frequent price (fees are in USD):

  • A huge college undertaking, if purchased upfront, will price tag you no in excess of $11.50 per online page;
  • A university assignment will benefit college students $14.00;
  • A college paper will price $16.fifty if requested beforehand;
  • A Master’s thesis are likely to be $19.00 for each web content;
  • A Ph.D. dissertation would be the most large priced and will be $23.00 per website page.

WriteMyPaper4Me.org

  • General Overview

Along with the ultimate, although not least, group on our checklist is WriteMyPaper4Me which area on their own to be a vastly inspired enterprise that provides performs of the excellent high-quality. They employ well-educated writers that have refined recognition in various areas and ask for them receive a number of complex tests to guage the quantity of their abilities. So, you may be certain that these writers is not going to allow for you down mostly as they might be extremely correctly ski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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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ee title and information internet pages;
  • Free define;
  • Free pace shipping and delivery;
  • Free amendments;
  • Free numerous revisions;
  • Free references;
  • Free thesis and dissertations draft;
  • Free enhancing and proofreading

We feel that all organizations ought to actually entail editing and proofreading into deals, and WriteMyPaper4Me shares our view.

  • Pricing

WriteMyPaper4Me is really a somewhat low cost enterprise. Selling prices for virtually any webpage with the school piece start at near $14.00 and go around $23.00 dependent throughout the urgency of delivery. For anybody that’s an undergraduate college student, the cost could be initiating from throughout $16.00 and increase every one of the approach to $26.00 while in the party the deadline may very well be the following working day. WriteMyPaper4Me made aspects fast. All you’ll be wanting to perform is normally to head over to their web-site and come across an automated calculator perfect over the house web page. It’s going to at some point be speedy and easy to calculate basically exactly how much you’ll be billed to obtain a action at your amount and ascertain irrespective of whether you would like to receive aid from this enterprise or not. We believe you can expect to totally wan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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